"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17장에 등장하는 아주 익숙한 구절이다.
겨자씨는 크기가 아주 작다. 마치 티끌이나 먼지와 같이 극히 작은 물질에
비유되지만, 그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서 싹이 트고 자라나게 되면, 공중의
새들도 날아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아주 큰 나무로 자라나게 된다.
그래서 겨자씨는 무한한 잠재력을 숨기고 있는 엄청난 비밀의 씨앗이라는
의미로서, 오랜 세월동안 종교철학에서 믿음의 깊이를 상징화한 은유적
표현으로서 곧 잘 인용되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겨자씨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
고대로부터 겨자씨에 대한 은유적 표현을 인용해온 스토리들은 다양하게 많다.
불교의 경전인 <유마경> 에는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있다 하였는데,
어찌 그런 큰 산이 작디 작은 겨자씨 속에 들 수 있습니까?" 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겨자씨에 얽히 또 다른 역사적 스토리는, 알렉사더 대왕의 동방 원정기에
등장하는 것이 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가 알렉산더 대왕과 전쟁을
앞두고서 선전포고의 의미로서 선물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선물은 참깨가
가득 담긴 부대(負袋)였다고 한다.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나의 군대는
참깨 만큼이나 많으니 승산없는 전쟁을 하지말고 물러서라" 는 의미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알렉산더 대왕은 답장으로, 작은 봉투안에 작은 겨자씨 하나를
넣어서 다리우스 황제에게 보내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이 겨자씨를 보낸 이유는 ""우리의 수가 적다고 무시하지 말라.
우리는 작지만 무섭고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너희들을 맞이해서
충분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알렉산도 대왕은 다리우스 황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만다.
그런데 이 겨자씨의 작은 힘이 나중에는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 종교적 스토리에는, 성녀(聖女) '소화 데레사' 에
대한 것이 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15세기의 인물로서,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가서 24세에 선종함으로써 10년도 안되는 짧은 수도원 생활을 했었던
수녀였다.
데레사 성녀는 자서전에서 기록하기를, " 수많은 성인들이 대부분 그러하였듯이
위대한 업적을 남기거나 새로운 수도회를 창립하거나 순교를 하거나 성덕을
이루기 위해서 초인적인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봉쇄수도원에서
기도를 하고, 마룻바닥을 닦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
속의 생활들이, 다른 사업을 한 데 모은 것보다 더 교회에 유익함이 있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눈에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아주 소소하고, 그러니까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는 바늘 하나를 주울 때에도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주우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영혼 하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당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데 조그만 희생 하나, 눈길 한 가닥,
말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아주 작은 것도 이용하고 그것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성인의 길'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비록, 그 보여짐이 아주 작고 초라한 것일자라도 그 쓰임새가 나중에는
아주 크고 원대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타낸 구절이다.
바로 이것이 성녀 소화 데레사가 발견한 '겨자씨의 비밀'이었다.
가장 작은 것이 나중에는 아주 큰 것이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겨자씨',
하지만 현대에는 알게 모르게 내가 던지는 말과 글과 행동 하나하나가
파급효과를 일으켜서 사회전체적으로 어떻게 널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의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겨자씨로서의 그 파급이 될 영향력을 가진
알 수 없는 엄청난 말과 글을 남기고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그것이 나와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쪽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으면 더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