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블라인드 채용의 확대 - 학벌중심사회를 타파할 수 있을까?
과거 어느 사회학자의 말이 흥미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 결혼을 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의 학벌수준을 따지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3개국 이라고 한다. 한국, 일본,중국 "
어느나라에서나 학력을 살펴보기 위해서 어느 학교출신이냐를 묻는 것 정도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국만큼이나 출신대학을 가지고서 결혼문제의 판단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의 나라는 아주 드물다는 이야기일 것입니. 그리고 일본 역시 학벌을 대단히 중요시합니다. 우리나라가 과거 40년 일제통치하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학벌중시사상이 골수에 깊게 박혀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기는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체에서도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에는 출신학교별로 기본적인 점수대를 부여한 후 서류상의 입사지원서를 간추려내고, 그 후에 실무면접으로 들어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는 대기업이라는 일명 일류기업의 입사조건이라는 것은, 서울인 대학출신들이어야 하며, 명문대학교 출신들이 대기업 취업의 기회를 점령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후 산업적 사회적 정치적인 변화와 더불어 이러한 흐름이 차츰 퇴색되어지면서, 학벌이외에도, 각종 활동경력들을 중요시하는 성향이 점차 확대되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흐름에 맞추어 대학졸업생들은, 일명 스팩을 쌓는 것에 목숨걸다시피하면서 자신의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까지도 학벌이라는 것은 사회진출시에 주어지는 1차적인 조건이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주요기업들을 중심으로, 신입사원 선발시에 학력을 아예 기재하지도 않고 그러한 조건을 따져 묻지도 않고 실무적인 능력만을 평가하는 블라인드 면접 방식이 서서히 시행되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추세를 파악해 보건데, 무엇보다 기업체 내부에서도 사람을 선발하고 평가하는 방식에 있어서 기존의 가치관으로는 여러가지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발 맞추어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측면으로 인사평가방식을 전환해야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체에서는 필기시험으로 최저 line을 책정하고 다음은 적성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성평가라는 것이 면접에 의존하게 되는데, 면접은 객관적인 성적을 메기기가 어려운 난점이 있습니다.
지금도 기업들은 심층면접 다층면접을 중요시 하는데 공평성, 공정성을 유지하기가 용이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거기에 잘못하면 비리가 개입될 소지도 충분히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면접의 판별기준이 모호하니까 자연히 학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벌이 좋다고 우수한 사원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기업체에서 실무관리자로서 지내본 적이 있다면, 다음과 같은 비슷한 체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신입사원에게 A라는 업무를 시켜보면 아주 잘 합니다. 그런데 다음번에 B 라는업무를 시켜보면 아주 바보멍청이가 되는 경우를 보았을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재주는 수백가지인데 학벌로만 그것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업구조가 다변화하고 각각의 업무내용이 고도화 될수록 학벌보다는 적성에 치중하는것이 순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업체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입사 면접뿐만 아니라, 면접이라는 이름을 달고 행하게 되는 모든 면접이라는 관문은 '선입견'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출신 지역이 어디인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판단의 주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름값 있는 대학을 나온 학생들이 지방대 출신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되고, 지금까지 학벌사회는 더욱 공고화되어져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학벌 중심사회의 악순환의 반복인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사실(성실함의 척도쯤 될까?)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평생동안 '능력'과는 무관하게 가산점 아닌 가산점을 취해버리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력서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블라인드 면접'은 학벌과 지역 차별의 근원을 없애버리고자 하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아주 획기적인 선발방식인 것입니다.
'블라인드 면접'과 관련해 가장 상징적인 케이스는 바로 'KBS'일 것입니다. 정연주 씨가 KBS 사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부터 2008년 동안 지방대 출신 합격자는 전체 606명 중 189명으로 31.1%나 되었습니다. 이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지방대 출신 합격자 비율이 10.3%에 지나지 않았던 것에 비해 급증한 수치입니다. 이 변화는 오로지 '블라인드 면접'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최근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면, SK텔레콤은 작년 신입사원 채용에서 '블라인드 면접'을 실시했습니다. 이름과 성별 외에 다른 내용들을 가려버리고 선발을 하게 되자, SKY 출신 합격자(30%미만)가 줄고, 지방대 출신(50%에 육박)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출신 대학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보면, 무난한 학창 생활을 보낸 지원자보다 도전적인 경험을 하거나 적극적인 친구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블라인드 면접'을 통해 사회 속의 '가려진' 인재들을 발견하고, 그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쾌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구나 현재는 정부에서까지도 기업체 면접의 방식을 블라인드 형식으로 바꿀 것을 권유하고 있을 정도라니, 그 변화의 신선한 바람이 사회전체의 학벌중심가치관을 앞으로 어떻게 더욱 더 변화시켜나갈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과거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간 것도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이 훨씬 더 팽배해있는 것이 아직까지의 현실인데, 대학교까지의 스펙을 무시한 블라인드 채용이라면 그 전까지 열심히 살지 말라는 말인가요? 라는 자조섞인 불만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의 서울강남 중산층 이상의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자사고/특목고에 입학시켜서 일류대학 진학을 좀 더 쉽게 만들고, 좀 더 유리한 학벌을 갖추게 하려고 안달이 나있는 세태에서, 과연 이러한 주요기업체들의 블라인드 채용방식 확대는 기존의 학벌중심가치관과는 엄청난 반발적 불신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그래도 일류대학 나온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더 똑똑하고 일도 잘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더라" 라는 평균적이고 보편적이라고 하는 인간평가의 가치관이 이제는 서서히 막을 고하고, 다변화 전문화 고도화의 지식사회에서 학벌만으로는 평생직장 좋은직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평가의 가치관이 팽배해져 간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기존의 학벌우선주의 사고방식이 짙게 깔려있는 구세대들이 이러한 변화의 추세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