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감정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섹스를 갈구하게끔 되어져 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섹스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섹스를 통해서 사랑이 더욱 성숙해진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성적인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사랑의 열정도 더욱 뜨거워진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섹스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 있는 한, 사랑의 감정은 변하지 않고 더욱 성숙해진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이 행복의 다른 말이라는 이유는 참고 견디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하면 실제로 설레고 들뜨고 가슴 벅찬 감동이 있기에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랑의 감동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치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변화되지 않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 변화가 사랑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변화인지, 아니면 사랑에 실망을 느끼는 변화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사랑을 더욱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섹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섹스를 하면서 가슴 벅찬 감동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섹스가 아니다. 섹스를 동물의 교미처럼 삽입섹스로만 축소해놓고 종족 번식을 위한 섹스를 하면 절대로 사랑을 성숙키킬 수 없다. 사랑을 성장시키는 섹스의 역할까지도 외면하다보니, 사람들의 섹스에 대한 터부시한 관념을 확대시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지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섹스가 가지고 있는 유용성을 통하여 진정한 의미인 사랑을 키워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랑만큼 섹스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도 없고 섹스만큼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섹스를 빼놓고 사랑을 논한다면 이미 거짓된 사랑이고, 사랑을 빼놓고 섹스를 말한다면 그 역시 거짓된 섹스에 불과하다.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서는 아가페적인 절대적인 사랑을 원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금욕적인 엄격한 생활을 통해서 사랑과 섹스를 구분지었었다. 그래서 사랑은 신의 영역까지도 확대하여 설명하면서도, 섹스는 동물의 교미처럼 삽입섹스로만 축소하려 했었다.
하지만 생물학적 측면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공복이나 갈증과 같은 동물적 욕구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사랑도 욕구이고 섹스도 욕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로스' 는 감각적인 욕구와 갈망을 가진 열정적인 사랑을 뜻한다. 낭만적인 사랑을 뜻하는 현대 그리스어 'erotas'도 'eros' 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결국 인간의 사랑은 그것이 낭만적이든 열정적이든 모두 성적인 사랑이라고 설명해야 옳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과 섹스를 구분해서 말한다. 사랑과 섹스를 동일시하면 사람들은 몹시 당혹스러워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사이에 섹스 없이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안에 욕구적으로 끝나는 섹스라면 사랑 없이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없이 섹스를 한다고 해서 관계를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애정이 싹트게 마련이다. 반대로 섹스없이 사랑하면서 지내는 사이라면 오랜 세월 속에서 어느 순간에 마음이 다른사람에게 옮겨가게 된다. 설령 오랫동안 섹스를 하더라도 서로가 만족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면 사랑도 식게 된다. 섹스는 단순히 쾌락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감정적인 유대를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도 동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수 많은 동물들 중에서 섹스를 단순히 삽입섹스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성숙시키는 매개체로 이용할 줄 아는 동물은 유일하게 인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