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ism]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사유하지 않음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코르셋 글을 썼었습니다.
질문 몇가지에 대한 답글을 남기는 것으로 포스팅을 시작하겠습니다.
1. 여성이 스스로를 꾸미고자 하는 동기가 과연 남성으로부터 온다고 할 수 있나요? 화장을 하고 스스로를 예쁘게 꾸미는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여성들이 아니구요?
일단 스스로에 대한 질문부터 합시다.
- 아르바이트나 직장 생활에 있어서 타인이 색조 화장을 강요한 적이 있는가?
- 명절 및 가족 모임에 꾸밈노동을 하지 않을 경우 어른들로부터 꼰대질을 당한 적이 있는가?
-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성형외과 광고의 모델 성별은 대부분 어느쪽인가?
- 주변인을 만날 때 본인이 하는 꾸밈 노동은 어느 정도인가?
(아예 안함/토너 및 선크림 등의 기초/ 색조화장/머리) - 애인을 만날 때 꾸밈노동을 하지 않을 경우 본인이 초라하다고 느껴지긴 하는가?
여성들이 왜 외모로 경쟁하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그 경쟁 구조는 누가 만든 것 같나요?
여전히 여성들이 문제의 원인이란 생각을 하신다면 본인의 알고리즘을 심히 의심해 보셔야 합니다.
2. "꾸밈노동" 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안하면 되지 않나요? 자발적으로 하면서 왜 남 때문에 한다고 남탓을 하지요?
1번의 대답이 충분한 답이 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3. "뚱뚱한 여성이 감히 ‘여성스러운’ 옷을 입으면 안 된다고, 예뻐 보이려 주제 넘게 화장을 하면 우스꽝스럽게 보인다고 말하는" 걸 "남성 사회" 라고 표현하셨는데... 이런 토크는 여성들이 못생긴 여자를 두고 하는 뒷담화의 대표적 예 아닌가요?
그 뚱뚱한 여성을 폄하하는 행동을 여성들도 하죠.
그러나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여성을 불링하는 문화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왜 평균치에 가까운, 혹은 평균치보다 높은 여성들은 그 평균치에 미치지 못하는 여성을 폄하할까요? 왜 외모에 대한 마지노선은 남성보다 여성이 높은 걸까요?
심지어 질문 자체가 "뚱뚱한 여성 폄하는 같은 여성이 더 많이 한다"는 전제를 두고 있어서 더욱 무례하게 느껴지네요.
윗부분은 제 대답이었구요,
아래는 제 지인들 코멘트 입니다.
저 본문에서 칸트 이야기 코멘터리 단 사람입니다.
자율과 타율의 구분을 좀 더 엄밀히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남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내가 이렇게 꾸미는 것"과, "나는 이렇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혹은 나는 전혀 꾸미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주위의 시선이나 압력으로 인해 요구받은 대로 꾸밀 수밖에 없는 것"의 차이를요. 양자는 모두 개인이 수행한 행동은 맞지만, 전자는 자율적으로 수행된 행동이고, 후자는 타율적으로 수행된 행동입니다. 코르셋은 각 여성들에게 타율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압력이에요. 탈코르셋은 그 타율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것이 핵심이구요.
1에 따라, 꾸미고 싶으면 꾸미면 되고, 안 꾸미고 싶으면 안 꾸며도 됩니다. 다만 이 경우 여성에게 "너는 왜 여자애가 화장을 안 하냐"라던지, 직장에서 화장하고 출근할 것을 강제로 요구한다던지 등의 압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거죠.
3번은 무의미한 논의이므로 넘어가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외모가 "남성 취향"에 따라 평가되고 있는지 더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말에서 공격성이 느껴지네요. 질문을 하고싶다면 좀 더 예쁘게 날카롭지 않게 말투를 다듬은 다음에 질문을 하세요. 나는 당신의 질문받는 기계가 아닙니다. 당신은 질문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내 글에 동의하지 못하고 고까우니 지적하겠다는 발화 의도가 보이네요. 그런 분과는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질문받는 기계가 아니고 당신같은 인간 한두명 찾아온 거 아니니 하나하나 답해주기 귀찮고 당신이 겪어보지 않았다고 없는 일로 취급하고 공격적 질문 하는 거 별로입니다.1)경쟁을 한다 치면, 왜 여성들끼리 다른 것도 아니고 화장이나 외모로 경쟁이란 걸 굳이 하게 됐을까. 생긴걸로 경쟁을 한다는 게 근본적으로 성립 불가함에도.
2)각종 면접과 알바 모집때 일과 상관없는 외모 조건을 붙이거나 지적질해대는 관행들.
3)소위 외모평가질이 여성들간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한다 해도, 그래 남성사회는 그런 외견에 대한 평가에 넘나 초연하셔서 전혀 그런 평가를 안 하나 봅니다.여성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해온 가부장적 사회가 문제인거죠. 왜 여자들의 꾸미는 동기를 여자들간의 경쟁관계로 환원시키는지요. 각종광고,예능,드라마부터 시작해서 일상의 모든 곳에서는 여성에게 유난히 꾸밈노동을 부추기며. 마치 꾸미는게 여성들의 본능인 양 세뇌시키는거죠.
질문이 아니라 "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건데 꼬우세요?" 이 정도 수준이네요. 특) 이미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음. 맨스플레인의 전형...
스압 심각하지만 책 세 권에서 발췌해 둔 것 중 뽑아 보았습니다.
달아준다고 읽을까 싶긴 하지만.. ㅎㅎ;
한채윤, 「이성애 제도와 여자의 남성성」, 권김현영 외 5인,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교양인, 2017
195쪽 : 나는 ‘이미’ 여자인데 왜 매번 여성임을 새롭게 주장해야 하는 것일까? 대체 내가 방금 증명한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자궁이 있다는 것일까? 이런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더 어이없는 사실은, 겉모습만으로 확신을 품고 여탕이나 화장실에서 나가라고 하던 이들도 나의 목소리만 들으면 금세 가신의 의견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성별은 다른 무엇도 아닌 성대를 거쳐 나온 ‘목소리’가 증명해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목소리’를 외모보다 더 신뢰하는 것일까? 그 목소리가 증명하는 것은 나의 성별일까 아니면 가까스로 사람들의 기대에 들어맞는 퍼즐 한 조각일까?
196쪽 : 나는 사람들의 일관성 없음에 놀라면서 마침내 답을 찾았다. 그리고 왜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왜 끊임없이 내게 화장이나 긴 머리, 치마와 하이힐을 권유했는지, 그 진짜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 핵심은 여성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쉽게 믿을 수 있도록, 한눈에 알아챌 수 있도록 ‘충분히’ 드러내야 한다. … 누가 보더라도 알아챌 전형적인 여자의 모습에 가깝게 꾸며야 했던 것이다.
197쪽 : 이렇듯 여자임을 드러내야만 한다는 것은 여성이 인간의 기준 바깥에 위치해 있음도 동시에 드러낸다.수전 J. 더글러스, 『배드 걸 굿 걸 - 성차별주의의 진화: 유능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주술』, 이은경, 글항아리, 2016
133쪽 : 리노[재닛 리노, 빌 클린턴 때의 국무장관]는 타인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적절한 옷을 입고 적절한 머리 모양을 하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승인은 그녀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점이야말로 사람들을 극도로 불편하게 만들었다.
133~134쪽 : 아주 사소한 것, 이를테면 여자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남자에게는 어떻게 인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 몸을 어떻게 가누고 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떤 옷과 장신구 / 를 착용하고 어떤 머리 모양과 화장을 해야 하는지 등에서부터, 이성애자 남성 및 여성이 자신은 하나의 성에 속하고 그 나머지 성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인식시키는 일이 매우 익숙한 습관처럼 되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성을 알리고 또 알린다는 주장은 매우 확고하다. 이 일련의 말과 행동들은 시시각각 축적되어 전체를 완성한다.
134쪽 : 그녀[재닛 리노]는 여러 가지 죄를 지었다. 중성적인 모습을 하고 자신의 성을 표현하는 데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공적인 자리에서의 처세에 관한 모든 규칙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또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 하지 않았고, 타인과 어울려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135쪽 : 여성이 계속해서 여성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은 우리 모두가 남녀로 구분되는 각자의 성별을 나타내고 알리기를 멈춘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이 세상이 붕괴될 것임을 시사한다.
137쪽 : 동시대의 여성성의 가면을 쓰지 않으려는 여성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대가는 외면이었다.너멀 퓨워, 『공간침입자: 중심을 교란하는 낯선 신체들』, 김미덕, 현실문화, 2017
105쪽 : 젠더나 인종과 무관한 신체는 그 지위가 얼마나 특권적 규범인지를 보여준다. 이들의 권력은 신체적 속성 없이 바로 정상으로 보이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들의 젠더나 인종은 비가시적이며 논쟁 대상이 아니다. … 남성 신체는 성적으로 비가시적인 존재이며 젠더의 부재로 눈에 띄지 않는 규범적 장소를 차지한다.
144쪽 : 젠더를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하게 형성되는 정체성, 즉 행위들의 정형화된 반복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 버틀러는 이러한 행위들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염두에 두었는데, 그것들이 “사회 금기나 터부가 강제하는 수행적 성취”라고 주장한다(1997b: 402). 그녀는 안착된 젠더화된 행위를 이해하는 데 연극 비유를 통해 “각본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연되고 연극이 텍스트와 해석을 필요로 하듯, 젠더화된 신체도 문화적으로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이며 이미 존재하는 지시의 제약 안에서 해석을 상연한다”(1997b: 410)고 말한다.
145쪽 : 이와 같은 틀로 생각해보면 이런 종류의 젠더 각본(스타일ㆍ행동ㆍ수행) 즉 ‘젠더에 맞춰 조화롭게 행동하는 것’이, 남성적 성취의 특별한 형태를 담지한 젠더/의원 각본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47쪽 : 부르주아 국가 형성에서 이성적 의사소통이 물리적 폭력을 대신했을지라도 의례에는 폭력ㆍ섹슈얼리티ㆍ정치권력의 결합이 남아 있으며(Pitkin 1984; Brown 1988, 1995), 지금은 다만 관료주의적으로/연극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을 뿐이다.
167쪽 : 여성의원들은 자신이 제기하는 쟁점들뿐 아니라 신체 외양도 관리해야 한다. 미디어가 의원을 만들고 추락시키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여성의 신체 이미지, 몸짓, 태도에 주의 깊은 시선을 계속 보낸다.
191쪽 : 포섭/배제의 과정은 대개 지극히 미묘하고 명시적으로 논의되거나 언급되지 않는 비공식적 행동 규칙과 관련 있다. 직업과 전문직 세계를 포함한 모든 사회 세계에 “공식적으로 결코 언급되진 않지만 선택과 배제의 실제 원칙”(Bourdieu 1984: 102)으로 작동하는 ‘암묵적인 필수요건’들이 있다.
253쪽 : 여성들은 남성 집단에서 일하는 동안 이른바 여성성을 지녀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남성성이 여성성과 정반대로 정의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여성 신체로 두 형태의 젠더 행위를 명확히 구사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균형 잡기이다. … 여성성이라는 사회 규칙을 지키는 동시에 지나치게 여성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저 질문을 던진 분께는 별 생각 안듭니다. 비슷한 사람을 5조5억명 봐서..
굳이 이렇게 긴 글을 쓴 이유는, 이 글이 질문자 개인에게 건네는 대답이 아닌 남성사회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세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 질문자에게서 이나라의 남성들의 평균적인 여성관도 확인할 수 있구요.
이따금씩 저는 저렇게 무지한 질문이 들어오면 이런 글들을 쓸 생각입니다.
이쯤에서, "사유하지 않음"은요.
모를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 만질 수 없는 이야기, 볼 수 없는 눈물인걸요.
그런 당신들에게 완벽히 감정이입 할 것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저도 종종 실수하는걸요. 내가 당한게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분노를 과민반응 취급한 적도 있었는걸요. 과거의 실수를 생각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그저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죠.
이 문제에 있어서 '모르는' 것들은 대부분 '사유하지 않아서' 모르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