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愛國). 국가를 사랑한다.
대체 국가는 무엇이관데 이를 사랑한단 말인가.
요즘 같은 때면 애국이란 단어만큼 뒤숭숭한 개념도 없다.
애국의 정체를 탐색하노라니 영 잠도 오지 않는다.
군인복무기본법 제5조 제3항
군인은 명예를 존중하고 투철한 충성심, 진정한 용기, 필승의 신념, 임전무퇴의 기상과 죽음을 무릅쓰고 책임을 완수하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을 굳게 지녀야 한다.
애국을 강령으로 삼는 국군이라면 마땅히 사랑의 대상을 명확히 알고 있지 않을까?
상대를 모르고 사랑한다 외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을까.
다시 한번 법조문을 뒤져보자.
군인복무기본법 제4조
① 국가는 군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제도를 마련하여야 하며 이를 위한 시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야 한다.
② 국가는 군인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군 복무에 대한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복무여건을 개선하고 군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그래, 국가는 군인에게 밥을 챙겨주는 존재로구나. 제도를 마련하고 시책을 추진하는 행정부가, 그리고 행정부를 총괄하는 정권이 곧 국가로구나.
지난 날을 돌이켜 보니, 그동안 국군은 정권의 지시에 따라 정권에 반대하는 반국가(反國家) 세력들을 진압하곤 했다. 반국가라는 어휘 자체부터 정부 시책에 반발하는 집단을 수식했다. 여기서 국가의 의미가 더욱 명징해진다. 그렇다. 따지고 보면 내가 받았던 국가의 부름이라는 입영통지서도 결국 정권이 임명한 수장을 따르는 행정기관에서 발송한 것이 아닌가.
맞다. 국군이 사랑하는 대상은 정권이고, 국가란 정권이다.
쉽게 말해, 애국은 정권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큰 깨달음이다. 나도 애국지사가 되자면 정권의 정책에 적극 찬동하고 반대 세력을 물리치면 될 것이다.
됐다! 이제 속시원히 잠을 청할 수 있겠다.
... ....
한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남는다.
국가는 정권인데, 우리는 왜 그토록 조선 시대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하나? 과거 조선 왕조라는 정권은 없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다. 일본도 더 이상 일왕의 국가가 아니다. 명목상 일왕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통치권을 휘두르는 정권은 따로 있다.
내가 사랑을 바치는 정권이 아닌, 아무런 관계도 없는 다른 정권 아래에서 일어난 일을 어째서 꼬투리잡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또, 나는 왜 그리도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이름은 왜 국가대표가 되었는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대한체육회에 가입된 대한축구협회에서 뽑은 선수들이기 때문인가? 어딘가 이상하다.
문득 허구의 이야기인 영화 속 한 대사가 머리를 스친다. 혹시 이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래, 헌법이라면 최상위법으로서 믿을 수 있겠다. 정권도 항시 국민을 섬긴다고 말하지 않던가. 왕이 존재하던 시절에도 군주민수(君舟民水)라, 왕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국민이라함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연속성을 가진 공동체를 일컬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정권은 바뀌었지만 조선대로부터 이어지는 공동체의 삶에 대한 책임을 일본의 공동체에게 묻는 것일 터이다. 내가 국가대표를 목놓아 응원하고 있던 까닭 또한, 그들이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키워지고 선발되어 우리를 대표하고 있는 연유에서가 아니겠는가.
옳다. 국가란 국민이다. 애국은 국민을 사랑함이다.
그렇다면 애국이 별 것이겠는가. 내 이웃을 사랑하면 그만이다. 형편이 넉넉치 않은 이웃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보내고, 잘 나가는 이웃들에게는 신세지지 않도록 분발함이 다 애국이다.
... ...
... ...
아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국군이 사랑하는 국가의 개념을 보건대, 이는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국군은 여전히 언제든 국민을 살육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 국군은 애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조직이다. 국가는 국민일 수 없다.
역시 애국만큼 뒤숭숭한 개념의 단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