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얼마나 믿을 수 있습니까? 다시말해, 빛, 소리, 질감, 화학 작용 등 우리의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자료들을 어느정도로 신뢰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감각의 자료라고 믿는 것들은 따지고보면 우리의 의식 작용이 이를 인지함으로서 자료로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결코 순수하게 감각 기관의 자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머리에 작은 악마가 들어앉아 눈과 코와 귀로 들어오는 신호들을 교란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알아 차릴 수 있습니까? 아니면 아예 이 악마가 신호를 만들어 내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습니까? 광인들은 자신이 광인임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외부의 대상들, 즉 물질들은 실재하는 것일까요? 모든 대상이 사실은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요?
사실 일상에 하등 도움이 되지도 않고 얼토당토 않아 보이는 이 질문은 막상 답하고자 하면 그럴듯한 논리적 답변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관하여 방법서설의 저자 르네 데카르트(1596~1650)도 자신이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며, 자신의 모든 감각을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머릿속에 자신을 기만하는 악마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악마가 비실재적인 사물을 끊임없는 환영으로 그의 감각 속에 실재하는 것처럼 제시한다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기계들이 부여하는 가상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카르트가 확신할 수 있었던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존재였습니다. 이는 스스로의 존재에 관한 의심이 불가능했던 까닭이었습니다. 만일 자신이 존재하지 않다면 악마가 자신을 속인다는 가정부터 성립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다면, 자신은 존재하는 실체인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는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여기서 논증한 자신의 존재는 데카르트에게 있어 모든 지식을 새로 쌓아올릴 단단한 기초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블로그의 커버 이미지 우측을 담당하는 아래 그림은 제가 앞으로 떠올릴 생각의 건전한 기초를 상징합니다. @wakeprince 계정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적어 낼 것이지만, 그 생각들의 굳건한 기반을 찾는 데에는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기반 위에 생각을 쌓아 올리는 접착제로서 논리라는 도구를 사용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모쪼록 @wakeprince가 단순한 흥미만을 유발하지 않는, 유익한 유흥거리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 Descartes, R. (1997). 성찰. 이현복 (번역). 서울 : 문예 출판사
[2] Russell, B. (2000). 철학의 문제들. 박영태 (번역). 서울 : 이학사 (원전은 1912년에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