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아메리카노와 같이 쓴 것을 왜 먹는지 몰랐습니다만, 최근 하루에 큰 잔으로 몇 잔씩 마시고 있는 저를 보면서 왜 이렇게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먹고 있는지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히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적응한다는 보편적인 논리를 적용하긴 싫었습니다. 분명히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무엇인가가 있었겠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아메리카노를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것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더군요. 점심을 먹고 난 후 윗분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커피전문점으로 들어가 너는 뭘 먹을 거냐 물었습니다. 눈치가 9단인 저는 어느 음식점이나 메뉴판 제일 위의 것이 맛이 좋다는 생각에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립니다”라고 외쳤죠. 결과는요? 몇 모금 못 마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 도대체 맛있는 점심을 먹고는 왜 이런 쓴 음료를 먹어야 하는지 속으로 원망하면서 그날 점심은 막이 내렸죠.
참 사람이란 동물은 희한합니다.
점심때 누구와 약속을 잡든 본의 아니게 커피를 마셔야 하는 상황을 사회초년생으로 뒤엎기가 어려웠습니다. 당연히 모든 것을 안다는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따라가서는 멋지게 “따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를 외쳤더랬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계속 보면 미운 정이 드는 것처럼 이놈을 매일 빠지지 않고 마셔대니 어느 순간 쓰기만 했던 맛이 조금씩 변하고 나름 아메리카노의 맛까지 대략 구별해내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오늘도 아메리카노 한 잔 사서 제 옆에 놓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걸 제 돈 주고도 열심히 사 먹는 것을 보니 시간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도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하철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면서 문뜩 들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참 희로애락이 점철된 것이 인생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좌절에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도 한 줄기의 희망과 함께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기쁨이 있었고, 정말 기뻤을텐도 한쪽에 미처 챙기지 못했던 미숙한 측면에 속상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런 것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니 지금 제 입속에서 목을 타고 넘어가는 아메리카노가 맛있듯이 인생도 “아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무심코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완전체라고 일컬어지지만, 사실 우리의 뇌는 불안정한 측면도 많습니다. 불안적인 요소중 하나가 불안감입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감을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지만, 미래의 불안요소가 커진 현대 사회에서 날마다 행복하게 살아가기는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불안함은 녀남소노를 불문하고 그 사람의 상황에 아주 완벽히 커스터마이징 돼서 찾아옵니다. 이를 가뿐히 넘어서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겠죠. 제 인생도 한 잔의 아메리카노와 같이 처음에는 썼지만 달콤했던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물론 저와 같이 걷고 계신 여러분도 마찬가지로요.
전 자우림의 김윤아를 매우 좋아하는데, 그분의 노래 한 곡을 남기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