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빨래", 사실 사전 정보가 없었지만 괜찮은 뮤지컬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큰 고민 없이 예매했다(저렴한 가격도 선택에 한 몫 했다).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생각보다 꽤 큰 마음의 여운을 주는 뮤지컬이었다.
뮤지컬의 세세한 내용을 기술하면 나중에 볼 사람들이 스포일러를 당하게 되기도 할 것이고, 쓰는 나도 재미가 없기 때문에 전반적인 감상에 대한 이야기만 풀어볼까 한다.
뮤지컬 "빨래"는 서울의 한 달동네에서 사는 여러 사람들이 빨래를 매개로 소통하고 삶의 애환을 풀어나가는 뮤지컬이다. 뮤지컬 내내 중요한 장면이 전개될 때 어김없이 빨래가 매개체가 된다. 하지만 사실 빨래는 단순한 도구일 뿐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뮤지컬은 2005년 시연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점에서 박봉을 받으며 부당한 대우와 해고 위기에까지 처한 젊은 여성, 임금 체불은 기본이고 욕까지 들어먹으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넉넉하지 않은 중년의 연인, 그리고 일견 팍팍해보이고 돈만 밝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장애를 가진 딸을 부양하기 위해 힘든 삶을 이겨내고 있는 노파로 구성된 출연진들은 현실의 곳곳에 산재해있는 온갖 불합리한 부분들을 아프게 꼬집는다. 지금 봐도 신랄한 은유가 그 때 당시에는 얼마나 파격적으로 다가왔을까.
하지만 슬프게도, 12년, 거의 13년이 지난 현재에 뮤지컬을 보고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한국 상황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지금도 청년들은 서울에 모여 가난하게 삶을 연명하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참한 삶과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으며, 장애인과 노인들은 하루 하루 생존하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고 있다.
뮤지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뮤지컬에선 주로 서울 달동네에 사는 외지인들이 서울에서 사는 애환을 그렸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20년 가량 서울에서 산 나에게도 큰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한 차례 가정에 금전적 위기가 찾아온 이후, 지금까지 나는 서울 사람임과 동시에 외지인이었다. 서울은 돈 있는 사람들에게만 관대하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차갑고 무서운 곳이니까. 사실 서울에 자가주택이 없는 사람들에게 서울은 타향이나 마찬가지인 듯 하다.
거의 십여년의 세월 동안 서울의 외지인으로 살아가다 대학에 입학하고 잠시 서울을 떠나있었지만, 이제 다시 서울의 외지인으로 돌아가는 시점에 이 뮤지컬을 보게 된 것이 앞으로 나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에 집 한칸을 얻기 위해 하루하루 악착같이 살고 있다. 과연 나와 다른 서울에 살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서울이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일단 다시 서울에 살면서, 그 고민의 답을 얻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