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선 낙천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이 날때부터 정해진다고 말한다.
이를 긍정 정서성과 부정 정서성이라고 말한다.
긍정 정서성이 높은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사소한 보상에도 큰 기쁨을 느끼고, 이를 표현할줄 안다.
그러나 부정 정서성이 높은 사람들은 기쁨을 모른다. 불행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어지간한 일로는 입꼬리에 미동도 오지 않는다.
나는 둘 중 부정 정서성이 높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어도 그 기쁨은 잠시, 이내 다음에 있을 고통에 집중한다.
언제나 그래왔다. 아슬아슬한 예비번호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오랜시간 고생하며 버틴 군복무가 끝났을 때도, 열심히 공부해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도, 몇배는 더 열심히해 가고 싶었던 병원 수련 시험에 합격했을 때에도 그랬다.
대학에 들어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지? 군생활이 끝나면 이제 진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하지? 대학원 생활이 그렇게 힘들다던데 어떻게 버티지? 병원 수련은 대학원보다 몇배는 더 힘들다는데 어떻게 견디지?
끊임없이 부정적인 미래를 예상하고 불안을 느끼며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걱정한다.
사실, 이런 경험은 비단 긍정 정서성이나 부정정서성을 논하지 않고도 모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잘 대처하지 못하고 고통 받는다. 심리학을 공부한 나도 별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고통의 굴레에서 어떻게하면 빠져나올 수 있을까? 사실 평생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갑자기 뿅 하고 긍정적으로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최근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 미래 보다는 지금 여기에 초점을 맞춰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다.
지금의 나는 병원 수련에 합격했다. 이는 내가 8년의 시간 동안, 어쩌면 20년의 시간 동안 열렬히 바래왔던 그런 순간이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됐든, 나는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고 즐길 자격이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현재에 실존하는 '나'를 내버려두고 미래의 존재하지 않는 '나'에 몰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년에는 조금 더 현재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래본다. 나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 모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