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 여행기(옥자/ 스포주의)

tkhol(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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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옥자' 포스터>

영화URL: https://www.themoviedb.org/movie/387426-okja/reviews?language=en-US
별점: AAA

1. 우리가 몸 담은 현실: 모순

나는 '인간중심주의자'이다. 구체적으로 인간과 나머지들 중에 선택해야한다면, 나는 언제라도 '인간'을 선택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나는 '자연보호' 역시 인간중심적인 입장에서 지지한다. 왜냐하면 인간사회 역시 '자연'이라는 거대한 공간의 일부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자연의 균형이 파괴되면 그 피해는 인간도 함께 짊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연개발(파괴)에 극단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얻은 것임을 알고 있고,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포기할 자신도 생각도 없다. 여기까지 읽으면 독자들은 짜증이 날지도 모른다.

"도대체 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모순이 곧 현실이고, 우리는 이 모순적은 현실을 적절한 기준들을 통해 잘 조율해야한다는 점이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보호해야하지만, 인간을 위해 파괴되어야 한다. 이런 모순을 직시하고, 양쪽을 잘 조율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고, 영화 '옥자'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수평 팬 균형무게 주방 규모 주방기구 밖으로 무게 오래된 규모 균형 조정>

2. 강원도 산골 '미자'의 가족 '옥자' vs 글로벌 기업 '올란도'의 슈퍼돼지들

나는 '옥자'라는 영화를 통해 모순적인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도 '미자'의 가족으로 존재하는 '옥자'와 글로벌 기업의 상품으로 존재하는 슈퍼돼지가 함께 공존한다.최근에 서로 모순되는 영역 중에서 한 쪽을 선으로 옳은 것으로 규정하는 극단적인 현상들이 있다.

영화도 대기업 '올란도'가 슈퍼돼지들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부분은 얼핏 악해보이게 그린다. 대기업 '올란도'가 '미자'의 가족인 '옥자'를 도축하려는 모습도 얼핏 악해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올란도'가 만든 슈퍼돼지는 기존의 가축들보다 친환경적이면서 인간에게도 보다 질좋은 고기를 제공한다. 그 덕분에 인류는 다른 많은 가축들을 가두고 사육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기업 '올란도'는 나쁘기만 한 기업인가?

우리의 현실은 이처럼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당신이 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고 싶다면, 당신은 반대쪽에서 오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한다. 그런 각오도 없이 일방을 지지한다면 당신은 '위선자'이다. 악어포획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서 악어가죽으로 제작된 구두를 신고 있다면, 악어의 입장에서 가장 증오스러운건 '당신'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강아지 산책 애완견 반가움/ 견주와 행복하게 산책을 하는 강아지>

<사진출처: 인사이트:https://www.insight.co.kr/news/120457/ 철창에 갇힌 육견>

3.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 '미자'

우리는 성숙한 '미자'의 대사들을 잘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나는 감독 '봉준호'가 이 부분을 설계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는데. '미자'는 강원도 산골을 벗어나서, '올란도'라는 대기업이 '옥자'와 같은 슈퍼돼지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목격한다. 이는 '미자'가 '옥자'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영역에 있다가 모순된 반대 쪽의 민낯을 목격한 큰 사건이다. 어린 '미자'에게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3번을 돌려보아도 '미자'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옥자'를 외치고 '옥자'를 찾았을 뿐 다른 슈퍼돼지들을 언급하거나 구하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옥자'와 같은 다른 슈퍼돼지들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현실을 보고, 비밀 동물 보호 단체 ALF와 함께 나머지 슈퍼돼지들을 구조하는 전개도 가능했을텐데. '미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단한 감독 '봉준호'는 그렇게 영화를 이끌지 않았다.

'미자'는 인간사회의 규율(자본주의)에 따라 황금돼지를 주었고, 정당하게 '옥자'를 다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린 슈퍼돼지 한 마리를 몰래 구출했다. 그게 '미자'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미자'는 그 둘과 다시 강원도에 가서 행복하게 지내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올란도' 기업에 남겨진 슈퍼돼지에 대한 개입을 의미하는 그 어떤 여지도 없이 영화는 행복한 그들이 모습을 보여주며 끝났다. 그 순간에도 '올란도'에 슈퍼돼지들은 도축되고 있다.

'미자'는 차마 마주하기 힘든 모순된 현실을 용감하게 직시했고, 그것을 성숙하게 받아들였다. 이런 표현을 한 감독 '봉준호'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사진출처: 티스토리:https://seok436.tistory.com/290/ '옥자'을 '올란도' 기업에서 데리고 나오는 '미자' >

4. 모순을 극복하는 도전은 인간부터.

우리는 인간은 존엄하다고 배운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평등하다고 배운다. 그런데 실제 그러한가? 인간끼리도 서로를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현실을 만들지 못해서 많은 모순을 만들었으며, 이를 나름의 기준들을 통해 조율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 이외에 다른 것들이 겪는 모순을 '조율'도 아닌 '극복'하자고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된다.

공동체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되어 있다는 말은 막쓸 수 없다는 이야기이고 우선순위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소중한 자원은 인간이 겪는 여러 모순을 조율하거나 극복하는데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쓴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다른 것들이 겪는 모순을 극복함으로써 인간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면 모를까.

최근에 음식점에 들어가서 육식은 살인이라며, 영업방해를 했던 운동단체가 크게 화제가 되었다. 그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미자'에게 배워라. 만약 주인공 '미자'가 영화의 결말과는 달리 모순을 '극복'하고자 육식을 '살인'라고 생각했다면, '미자'는 채식주의를 실천하면서 인공육을 홍보하거나 인공육 계발에 투자 및 모금운동을 했을 것이다.

즉 반대 쪽을 밀어버리는 손쉬운 '폭력'을 선택하지 않고, 반대 쪽으로 갈 필요가 없는 새로운 대안들에 자신의 자원을 기여했을 것이다. 그게 '미자'와 그들의 '차이'다. 어쩌면 '옥자'를 이끌고 '올란도' 기업의 사육시설을 지나갈 때, '미자'는 현실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어른이 되어 이 모순적인 현실을 '극복'하고자 결의를 다졌을지도 모르겠다.

남아 있는 누군가의 '옥자'들을 위해.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옥자' 포스터>

<후문사진: @bbooaae님 제작 및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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