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범수와 채택 (물러날 때)
원교근공 [遠交近攻] 의 범수
원어 풀이 :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가에 대하여 자국이 국제사회에서 유리한 위치를 획득할 목적으로 행하는 정책이다.
BC 270년 중국의 전국시대에 위(魏)의 범수(范睢)가 진(秦)의 소양왕 (재위 BC 306∼BC 251)에게 진언한 것에서 유래한다. (전국책)이나 사기(史記)에 의하면 범수는 가까운 나라를 그대로 두고 먼 나라를 공격하는 진의 대외정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려우므로 반대로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소양왕은 이 말을 받아들여 제(齊)·연(燕)·초(楚)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한(韓)·위·조(趙)의 3국을 공격하였다.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 (成功之下, 不可久處)
범수와 채택은 모두 고향에서는 인정 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았고 곤란을 겪었으나 자신들의 뜻을 잃지 않았고 성공한 후에는 미련없이 물러나 어진 사람들을 따랐기 때문에 사마천이 이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기에는 월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케하는 공을 이룬 후 「이미 목적을 달성한 군주곁에 오래 있는 것은 위험하다.」大名之下, 難以久居」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 도주공이 된 범려.
천신만고 끝에 秦나라 재상이 되어 큰 공을 이루었으나 떠돌이 객 채택의 말을 듣고 감복하여 재상의 인을 내놓고 응 땅으로 돌아가 응후로 봉해져 여생을 편히 마친 범수,
범수에게서 재상의 자리를 이어받아 많은 공적을 쌓다가 여불위가 나타나자 그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돌아가 강성군에 봉해진 채택등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 분명했던 세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채택은 연나라 사람으로 배운 바를 유세하며 벼슬 자리를 얻으려고 제후들을 찾아 다녔으나 뜻을 얻지 못했다. 조나라로 갔지만 쫓겨났고, 한나라와 위나라로 들어갔지만 가지고 있던 가마솥을 도둑맞았다.
마침 진나라 응후 범수가 자기가 추천한 인사들이 나라에 큰 죄를 지어 범수가 속으로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진나라로 들어가 범수의 화를 돋구는 말을 퍼뜨림으로서 간신히 그와 만날 수 있었다.
「그대는 일찍이 나 대신 진나라 재상이 된다고 큰소리 치고 소문내고 다닌 모양인데,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소? 어디 그 말이나 들어 봅시다.」
채택이 말했다.
「어떻게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십니까? 대체로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게절은 차례로 할 일을 다하면 물러갑니다. 이토록 4계의 순서가 분명하듯 사람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도 역시 분명하오. 공을 이룬 자는 물러나기 마련이며, 뒤에 오는 자가 나아가는 법입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승상이 물러날 때가 바로 지금이기에 한 말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누가 감히 나를 몰아낸단 말인가?」
「사람이 세사에 태어나서 신체가 건강하고 팔 다리가 성하고 눈과 귀가 밝아서 지혜로운 것이 선비의 바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다.」
「부귀와 영화를 누리면서 만물을 다스려 각기 뜻을 펴게 하여 각자의 위치를 찾도록 도와주고, 하늘이 내려준 명대로 사는 길, 그것이야말로 성인이 말하는 상서롭고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하오.」
「이 나라의 정승이던 상앙과 백기 장군, 초나라의 오기(吳起), 월나라의 문종 같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선비들이 바라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아니 그런가.
상앙은 효공을 섬길 때 몸과 마음을 다 하였고, 다른 생각을 품지 않았으며 공과 사가 분명하여 상과 벌을 공평히 시행하였다. 그리고 남의 원망을 사고 옛 친구를 속이면서까지 위나라 공자 앙을 붙잡아 진나라의 사직을 안전하게 하였다.
그는 또한 백성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며, 결국에는 타국의 장수를 사로잡고 적을 격파하여 진나라의 영토를 천리나 개척하였으니 그를 모범으로 한다 하여 안 될 것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기는 어떠합니까?」
오기는 초나라 도왕(悼王)을 섬길 때 사사로운 이익으로 국가의 이익을 해치지 못하게 했고, 아첨꾼들이 충신을 가리지 못하게 했다. 그는 말로 남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았고, 말을 억지로 꾸미지 않았다. 도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구차스럽게 하지 않았고, 위험하다고 하여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군주를 패자(覇者)로 만들었으며, 국가를 강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닥치는 화나 재앙도 결코 피하지도 않았다.
대부 문종은 또 어떠한가.
월나라 구천을 섬길 때, 그가 모시는 군주가 곤욕을 당할 처지에 있었으나 그는 충성을 바치는데 게을리 하지 않고, 그의 군주가 비록 망하게 되었어도 온 힘을 다하여 군주를 섬겨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공을 이루었다 하여 자만하지 않고, 부귀한 몸이 되어서도 교만하거나 나태하지 않았다.
이 세 사람이야 말로 의로움과 충절의 표상이다 . 그래서 군자는 의를 위해서는 어려운 일을 하다가도 죽는것을 마다하지 않으며, 죽는 것을 자기 집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고, 살아서 치욕을 겪는 것보다는 죽어서 영예로운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선비란 본래 자기 몸을 죽여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니 정의를 위해서라면 죽더라도 결코 원망하지 않는니 어찌 세 사람이 선비가 바라는 대상이 아니겠는가?」
채택이 말한다
「물론 상군, 오기, 문종은 신하로서는 훌륭했습니다만, 그들의 군주가 훌륭하지 못해 비명에 갔던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 세 사람이 공을 세우고도 자랑하지 않은 점을 칭송하지만, 어찌 불우하게 죽은 것을 부러워하겠습니까?
만약 죽음을 통해서만 충성을 드러내고 이름을 얻는다면 미자(微子)와 같은 사람은 어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공자 같은 사람도 성인이라 할 수 없으며, 관중같은 사람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명대로 살았습니다. 이들이 앞서 세 사람처럼 비명에 죽지 않았다 하여 그들만 못하다 하겠습니까?
대체로 명대로 살고도 공명을 이룬 자를 가장 훌륭하다고 하며, 공명을 이루었으나 제명에 죽지 못하고 비명에 죽은 자를 그 다음으로 치며, 이름을 더럽히면서까지 제명대로 산 인물을 가장 아래로 칩니다. 승상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身與名俱全者, 上也. 名可法而身死者, 其次也. 名在 辱而身全者, 下也
범수가 대답을 못한다.
채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상군과 오기, 문종 같은 인물은 신하로서 충성을 다하고 공을 이루었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인물이지만 그들은 모두 비명에 죽었습니다. 승상은 아직도 그들처럼 비명에 죽기를 바라나이까? 아니면 문왕을 도왔던 강태공이나 성왕을 보필했던 주공(周公)처럼 살겠습니까?」
채택은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
「승상이 나라를 위하여 쌓은 공로가 상앙이나 오기, 문종과 비교하여 어떠합니까?」
「나의 공로는 그들에 미치지 못하오.」
「지금 당신의 군주가 충신을 가까이하고 옛 친구를 잊지 않는 점에서는 효공, 도왕, 구천만 못하고, 당신의 공적과 군주의 총애나 신임을 받는 정도는 또한 상군, 오기, 문종만 못합니다. 그런데 당신의 봉록은 많고 지위는 높으며 가진 재산은 위 세 사람보다도 많습니다. 만일 당신이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당신에게 닥칠 근심은 세 사람보다 클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승상을 매우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범수는 대꾸를 못했다.
「'해도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에 있어서나 성하면 쇠하는 것이 천지의 변함없는 이치입니다. 나아감과 물러남, 굽히고 펴는 것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변함없는 도리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시행되면 나아가서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물러나 숨어야 합니다.
성인이 말하기를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덕이 있는 자를 만나기에 이롭다.'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은 원한을 이미 다 갚았고, 은혜도 다 갚았습니다. 그런데 승상은 세상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상군은 자기 군주를 위하여 법령을 정비하여 부정의 근원을 없애고, 몸을 사리지 않고 충성하여 나라를 부강케 하고 공을 이루었지만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백기는 불과 수만의 군사로 적 수십 만을 격파하고 70여 성을 함락하여 천하가 감히 진나라에 대항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공업이 이루어지자 사검(賜劍)을 받아 죽었습니다.
오기는 왕을 위하여 법률을 세우고 초나라 정치를 안정시켜 병력은 천하를 떨게 하고, 위세는 제후들을 복종시켰습니다. 그러나 공적이 이루어진 뒤에는 결국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대부 종은 월나라 왕 구천을 위하여 깊고 원대한 계책을 만들어 회계의 수치를 씻고 망해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결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구천을 천하의 패자로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의 공업은 너무도 분명하였고 사람들도 다 그것을 믿었지만, 구천은 끝내 그를 저버리고 죽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네 사람은 공을 이루고 물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재앙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른바 '펼 줄만 알고 굽힐 줄 모르며, 앞으로 갈 줄만 알고 돌아올 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범려는 이러한 이치를 알아 초연하게 세상을 떠나 도주공이 되었습니다.
듣건대,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옛글에는 ' 성공했으면 그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 네 사람이 화를 입었는데 당신은 왜 그것을 이어받으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어째서 이 기회에 재상의 인수를 돌려주어 어진 사람에게 물려주도록 하고, 물러나 바위에서 냇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역경에는 ' 하늘 끝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올 줄 모르고,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며,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승상은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옳은 말이오. 나도 ' 욕심이 그칠 줄 모르면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잃고, 가지고 있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면 가지고 있던 것마져 잃는다.'고 들었습니다. 삼가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범수는 재상의 인을 채택에게 물려 주고 여생을 편하게 마쳤다.
채택 또한 진나라에 10여 년 동안 머물면서, 소왕, 효문왕, 장양왕을 섬겼으며, 나중에는 시황제까지 섬겼다. 여불위가 나타나자 그에게 재상을 넘겨주고 돌아갔다.
펌) 명품 서버호스팅 오늘과내일
언제 물러나야…
범려는 월나라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케하는 공을 이룬 후 「이미 목적을 달성한 군주곁에 오래 있는 것은 위험하다.」大名之下, 難以久居」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미련없이 자리를 떠났습니다.
자신의 목표을 달성했거나 자신이 모시는 보스의 목표가 달성되였다면 물러나야 할때입니다. 성장하고 있지 않거나 배우는 것이 없다면 잠시 물러나 생각을 할때 입니다.
다시 하고 싶은 목표가 생기면 다시 돌아오면 됩니다. 목표가 수단의 단계가 될때 나아갈 수 있고 목표가 목표로 끝날 때 내려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