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왜 사냐고 물어보는 이유
왜 사니?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스럽거나 황당합니다. 답이 궁하기도 하고 딱 뭐라고 하기도 뭐하고...
'왜 사니?' 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물어본 것 같기도 하고, 살면서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남으로 창을 내겠소. 김.상.용.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을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월파 김상용 시인의 작품입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 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귀절입니다. 왜 웃었고 웃음은 어떤 종류였을까요?
모르는 것을 물으니 미안한 썩소였을까요, 잘 모르는 사람이 물어서 그냥 던진 냉소였을까요, 아니면 자비로운 미소였을까요?
행복에서 그냥..
몇년 전까지만 해도 '왜사니?' 에 대한 저의 답은 행복하려고 였습니다. 나름대로 자신 있는 답이였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막연한 답이였네요.
행복 하려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 좋은 남편, 아버지가 되고 싶었고, 좋은 사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너무 욕심이 많았는지 너무 목표가 막연했는지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행복한 척은 많이 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목표는 있었던 것 같은데 목적은 불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행복하자는 목표는 좋은데 '행복하면 뭐할건데' 대한 질문을 한번 더 던졌어야 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사는 것이 아닐까요?
불행해도 삶인 것을?
꽤 오래 전에 읽었던 글 중에서 80살이 넘은 분들에게 뭐를 하고 싶었냐고 물었더니
뒤돌아보니 대단히 위험한 일도 아니였는데 너무 조심했던 것이 후회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아꼈다
뭔가 남기도 싶었는데 그냥 가는 것이 아쉽다
세가지 답이 제일 많았다고 합니다.
첫번째 답은 자신에 대한 후회이고, 두번째는 가족이나 친구, 친지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였고 세번째는 세상이 자신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남기고 싶어합니다. 재산이던, 자식이던, 책이던 Legacy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남기려면 일단 무엇인가 많아야 하지 않을까해서 부, 자식, 지식, 권력들을 쌓습니다.
그러다가 목적인 자신만의 Legacy를 잊고 목표였던 부, 자식, 지식에 매달리게 됩니다. 목표를 잠시 잊었을 때 누가 "왜 사니!" 물으면 웃게 될 것 같습니다.
목적을 잊었다는 것도 잊었을 때 물으면 썩소를 짓게 될 것 같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철딱서니가 물으면 냉소를 짓게 될 것 같고, 누가 묻더라도 이해했다면 자비로운 미소를 지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