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대해서: 나름대로 마음 사용법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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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생각, 인지, 기억, 감정, 의지, 그리고 상상력의 복합체로 드러나는 지능과 의식의 단면을 가리킨다. 이것은 모든 뇌의 인지 과정을 포함한다. "마음"은 가끔 이유를 생각하는 과정을 일컫기도 한다.
불교에서의 마음
(펌)위키백과 안읽어도 됨. 땡중들의 필요 없는 잘난 척
불교에서 마음은 인연 화합의 산물이다. 즉, 마음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온갖 경계들과 마음작용들과의 관계 속에서 모든 유위법이 겪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변화를 인과의 법칙에 따라 경험하면서 찰나에서 찰나로 흘러가는 유동체이다. 마음의 이러한 찰나에서 찰나로의 변화를 특별히 가리켜 심상속(心相續, : mindstream)이라고 한다.
불교의 인간관에서 볼 때, 일생의 한 순간의 단면에서는 '나'라고 하는, 인간 존재의 주체 또는 자아로 간주되지만, 일생 전체에 있어서는 이 같은 심상속이 인간 존재의 주체 또는 자아로 간주되기도 한다. 또한, 이 같은 심상속이 전생과 금생 그리고 후생으로 이어지는 윤회의 주체 또는 자아로간주되기도 한다.
마음은 염오에 빠져 괴로움에 허덕이게 될 수도 있고 청정해져서 열반의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다. 불교의 인과설에 따르면 (깨달음·열반·진여)는 대해 인(因)이 될 수도 있고 연(緣)이 될 수도있는데, 수행을 통해 마음은 (깨달음.열반.진여) 를 성취하게 된다.
또한, 마음과 마음작용(심소)을 합하여 마음이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음이 해(害)의 마음작용(심소)과 상응해 있는 경우는 악한 마음 혹은 나쁜 마음 혹은 오염된 마음들에 속하고, 마음이 불해(不害)의 마음작용(심소)과 상응해 있는 경우는 선한 마음 혹은 좋은 마음 혹은 청정한 마음들에 속한다.
마음이 어떤 마음작용(심소)과 상응하였는가에 따라 반드시 그 상응에 따른 과보를 낳게 된다는 것은 불교의 근본입장 중 하나이다.
생주이멸 (生住異滅 살 생 살 주 다른 이 멸할 멸)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네 가지 모양. 곧, 사물의 無常(무상)함을 설명한 것.
여기서 무상은 상이 없어서 허망하다는 뜻은 아니고 일체의 만물이 끊임없이 생멸변화(生滅變化)하여 한 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의미.
별것도 아닌 것을
아닌게 아닌게 아닌데: 무슨 뜻일까요?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알아서 알아듣겠지 라는 뜻일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쉽게 해도 되는 설명을 참 어렵게 합니다.
마음이 자주 변해서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으니 수행을 통해서 좋은 마음을 지키도록 하자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쉽게 설명해 주면 안되나...땡중들이 먹고 살려고 어렵게 만들었나 봅니다.
금강경은 우리에게 삶은 상이 없음을 알려줍니다. 모든 물체는 끊임없이 변화하니 정해진 상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변화하는 상 중에서 하나를 정해야 합니다.
항상 같은 상을 선택할 필요도 없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마음이 가는 대로 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마음일 때 정해야 할까요?
아래글은 내 생각에는 인도의 도올인 오쇼 라즈니쉬가 아주 건방지게 해석한 금강경입니다. 부자들을 위한 히피인 오쇼. 몇십년전에 오쇼가 한국을 점령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마음일 때 선택을 하는 것이 자신이 됩니다. 분노를 택할 수도 있고 자비를 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시간 상조인 것을 알면서도 견디지 못하고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후회합니다. 그리고 같은 부족함을 반복합니다.
마음이 정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견디지를 못하고....슬프다 매일 매일 벌어지는 악순환 기다리지를 못하고 숨기지를 못하고.
마음에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잡념이 쌓이거나 불안하면 좋은 결정을 하기가 힘듭니다. 마음에 공간을 제공하려면 상을 없애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지만 참 힘들죠 그리도 다른 방법은 시간을 제공하는 겁니다. 시간이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마음이 넓어지면 최선의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최선의 결정이 최고가 되려면 좋은 때를 만나야 될 겁니다. 운칠기삼입니다.
좋은 때를 만나려면 자신보다 마음이 넓은 사람을 만나면 됩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지켜보는 겁니다. 시간을 두고.
보너스: 마음을 편하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잠시 평상심을 선사할 겁니다. 종교도 좋고 명상도 괜찮고 그렇지만 종교나 명상이 고상한 이념이 되면 골치 아픈 일들이 발생합니다.
오쇼 라즈니쉬의 금강경
금강경(다이아 몬드 수트라): 벼락처럼 단번에 자르는 지혜의 완성
... 삶이 곧 신이다. 거기엔 적대적인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거기엔 분리조차 없다. 신과 삶은 다르지 않다. 그들은 하나의 실체를 가르키는 두 개의 이름일 뿐이다.
... 붓다는 아무 이념도 없다. 그는 아무런 이념도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이념은 마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나온 이념은 그대를 마음 너머의 세계로 데려갈 수 없다. 어떠한 이념도 마음 너머의 세계로 가는 다리가 되지 못한다. 마음이 떨어져 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이념을 버려야 한다.
... 붓다는 이상(理想)마저 믿지 않는다. 모든 이상은 인간의 내면에 갈등과 긴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상은 분열을 조장하고 불안을 야기한다. 그대는 이저저러한 사람인데, 이상은 다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 사이에서 그대는 양 갈래로 잡아당겨 지고 찢어진다. 이상은 불행을 창조한다. 이상은 정신분열증을 초래한다.
... 이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한다. 매 순간이 갈등의 연속이다. 그는 갈등과 혼란 속에 산다. 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결정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신감을 상실한다. 그리고 일단 자신감을 상실한 사람은 모든 존엄성을 잃는다. 그때에 그는 성직자, 정치가 등 어느 누구에게라도 기꺼이 노예화될 준비가 되어있다. 그는 어떤 올가미에 걸리기를 기다린다.
... 붓다는 모든 이상을 벗겨간다. 미래 전체를 앗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내어주기 힘든 마지막 것까지 앗아간다. 그는 그대의 자아까지 앗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비어었음, 때묻지 않은 순결한 비어있음만을 남겨둔다. 그 순결한 비어있음을 그는 니르바나(涅槃)라고 부른다.
니르바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니다. 순수한 비어있음이 곧 열반이다. 그대가 지금까지 긁어모은 모든 것을 버릴 때, 더 이상 아무 것도 쌓아두지 않을 때, 더 이상 인색하거나 집착하지 않을 때,그 때에 돌연 비어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그 공간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임제선사는 모든 존재는 본래부터 붓다이다. "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비어있는 공간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그대는 온갖 잡동사니를 긁어 모았다. 그래서 그 비어있는 공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계속해서 물건을 집 안에 쌓아두는 것에 비교될 수 있다. 그때에 그대는 빈 공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공간이 남아있지 않다. 마침내 집안에서 움직이기조차 어려워지는 날이 온다. 공간이 없기 때문에 사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그러나 공간은 아무데로도 가지 않았다. 그대는 너무 많은 가구를 쌓아 놓았다. 텔레비젼과 라디오,전축,피아노,그 밖의 온갖 물건을 가득 들여 놓았다. 그러나 공간은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가구를 치우면 공간이 거기에 있다. 그 공간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그 공간은 가구에 의해 가려져 있었지만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 공간은 단 한순간도 방을 떠난 적이 없다. 그대 내면의 비어있는 공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대의 니르바나, 그대의 무(無) 또한 그와 다를 바 없다.
... 붓다는 니르바나를 하나의 이상으로써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가두는 대신 해방시킨다. 붓다는 그대에게 사는 법을 가르친다. 어떤 목적을 위한 삶이나 무엇을 성취해야 하는 삶이 아니라,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해지는 삶을 가르친다. 그는 각성된 의식으로 사는 법을 가르친다. 나는 그 각성이,초롱초롱 깨어있는 의식이 그대에게 무엇인가를 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깨어있는 의식은 수단이 아니다. 깨어있는 의식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 자체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다. 깨어있는 의식은 그 자체로 가치있다.
... 마음은 새로운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마음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낼 재간이 없다. 마음은 낡은 세계에 산다.
마음은 낡은 것들의 집합체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통해서는 결코 새로운 것이 생길 수 없다.
새로운 것은 오직 마음이 작용하지 않을 때,마음이 그대를 조종하지 않을 때,마음을 옆으로 밀어 놓았을 때에만 일어난다.
새로운 것은 오직 마음이 개입하지 않을 때에만 일어난다.
붓다는 내세(來世)나 저 세상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이 세상에서 더 주의 깊고 깨어있는 의식으로 사는 법을 가르친다.
... 저 세상을 지향하는 정신은 억압적이고 파괴적일 수 밖에 없다.
그 정신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동시에 타인을 파괴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그것은 병든 정신이다.
... 붓다의 정신은 전혀 다른 향기를 지닌다.
그의 정신에는 이상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저 세상도 없다.
그 정신은 지금 여기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그 정신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이 주어졌다.
붓다의 정신은 그대가 좀더 많이 보고, 좀 더 많이 듣고, 좀 더 많이 존재할 수 있도록 더욱 더 깨어있는 것이다.
... 명심하라, 그대는 오직 의식하는 만큼만 존재한다.
더 많이 존재하기를 원한다면 더 의식적이 되라.
의식은 존재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무의식은 존재를 앗아간다.
술에 취했을 때 그대는 존재를 잃는다.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을 때 그대는 존재를 잃는다.
그런 사실을 관찰해본 적이 없는가?
예민하게 깨어있을 때 그대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갖는다.
그대는 더 중심 잡히고 깊이 뿌리내린다. 주의 깊게 깨어 있을 때 그대는 존재의 확고부동함을 느낀다.
그것은 거의 손으로 만져질 듯이 분명한 느낌이다.
그러나 무의식적일 때,그저 질질 끌려가듯이 살아가고 깊이 잠들어 있을 때, 존재에 대한 감각은 그만큼 무뎌진다.
존재는 항상 그대가 가진 의식의 양과 비례한다.
... 그러므로 붓다의 메세지 전체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유때문이 아니라 의식을 가진 상태가 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의식은 존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의식이 그대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의식이 창조한 그대는 지금의 그대와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그대는 그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다.
'나'가 사라진 그대, 자아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그대, 아무 것에도 갇히지 않는 그대....순수하게 비어있는 공간,그 무한함,한정 없는 비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