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쯤에는: 뭐를 내려놓아야 되는 것인가?
공자님의 제자 자로
3천 명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이채를 띤 제자는 바로 자로였다.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그는 성격이 곧고 급하며 괄괄해 대처럼 부러지기는 해도 구리처럼 휘지 않는 위인인 동시에 남에게 지기를 싫어해 곧잘 아는 체하다가 공자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아는 것이다."(위정편)
공자님께서 자로에게 안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는 구절이 논어 위정편에 나옵니다.
토마스도 공자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공자님! 뭐를 내려 놓아야 합니까?'
'토마스야! 너에게 내려 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다. 내 것이 아닌 것은 내려놓고 내 것인 것은 지켜야 한다.'
질문 안에 답이 있었습니다
내 것이 아니면 내려 놓아야 하고 내 것이면 지켜야 합니다. 남의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탐욕이고 자신의 능력보다 더 원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능력을 키워서 더 지킬 수도 있고 다른 사람 것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의 것을 지키다가 자신이 가지게 되면 탐욕이 됩니다. 능력을 키워서 욕심이 성장하는 것은 발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는 탐욕은 안좋게 보이지만 그것도 다 지나봐야 알아서 하여간 자신의 마음이 편할 때까지 지키던지 내려놓아야 할 겁니다.
내 것과 남의 것
나의 아내는 나의 것인가, 내 자식들은 나의 것인가, 내 마음은 내 것인가?
하나도 나의 것은 없어 보입니다. 내 안에 있다는 마음도 내 것인가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 내 마음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까요?
내 마음이 나를 따라서 같이 잘 지낼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감정이라는 친구가 찾아오면 요동을 칩니다. 질풍노도처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한번 진하게 놀고 오라고 내려 놓으면 좋습니다. 뛰쳐나가려고 하는 마음을 잡고 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힘도 들고 오래 가기도 하고...
그런데 감정이라는 친구는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감정이는 왔다 갔다 하는 바람과도 같은 친구입니다.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떠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내 마음을 잘 조절할 수 있으면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가지고 있으면서 불편하면 남의 것이고 그리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주인이 찾아오면 주인인지 확인하고 돌려주면 됩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욕심을 안부리면 됩니다. 감정에 치우치는 것 같으면 시간을 자신에게 주고 욕심이 나는 것 같아도 시간을 주면 됩니다.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감정과 욕심이 안정 될 때가지 기다려 주면 좋겠습니다.
내려 놓았다가도 다시 할 수 있다고 느껴지면 다시 찾아가면 됩니다.
내 마음도 나의 것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번 물어보신 적이 있나요...내 마음이 내 마음이 같지 않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구속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항상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할 때 벗어나고 싶은 겁니다. 대신 돌아올 집은 필요합니다. 아주 이기적입니다.
주인인 내가 이런데 마음이는 어떨까요...마찬가지 일겁니다. 가끔 마음이도 자유를 만킥하고 싶을 겁니다. 주인처럼...그럴때 그냥 보내주세요 믿고.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내 것과 남의 것을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내가 책임질 수 있어야 내 것이 됩니다. 잘 관리해주고 자주 대화하고 그러다가 내 것이라고 생각 했던 것이 자신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선언을 하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고 자식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들이 스스로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하면 내 것이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아직도 관계가 있지만 더 이상 내 것은 아닙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책임질 수 있는 능력도 떨어지고 떠나 보내야 할 것들이 생깁니다. 내가 책임지고 지켜야 하고 관리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출처] 육십쯤에는: 뭐를 내려놓아야 되는 것인가?|작성자 Thomas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