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천재 행동 부족: 공정한 관찰자
욱이라는!
어제 친구와 내가 쓴 블로그 글에 대해서 이야기 중 친구가 반대의견을 말했습니다.
내가 속에서 욱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스스로에게 이게 이겨야 하는 게임이냐 져도 되는 게임이냐는 질문을 하려고 한다고 하는 것' 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미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는데 그런 질문이 가능하겠냐는 의구심이었습니다.
아주 좋은 질문이였습니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지?
수행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목적이 불분명한 상태에서는 수행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목적과 방법이 분명해지면 수행이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책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아담 스미스의 책 도덕 감정론을 재해석한 책입니다. 책 안에 흥미로운 소제목이 있습니다. '실수를 인정할 때 보이는 것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싶어 하며 실체로 그렇듯 아니든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이 공정한 관찰자를 떠올려야 하는 타이밍이다.
공정한 관찰자를 자주 떠올릴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면, 나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이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피하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행동이다.
저자는 공정한 관찰자라는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라고 합니다. 가끔 어떤 행동을 하다 보면 멈추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냥 저지를 때 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메커니즘입니다. 습관적으로 공정한 관찰자를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공정한 관찰자를 자제력이라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자제력도 연습이 필요하니까 막연함보다는 상상이라도 실질적인 무엇을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아담 스미스 선생님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조력자가 필요하고.
듣기: 실수를 인정할 때 보이는 것들
사람이란 볼래 자기 자신에 대해 애기하기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자기 의견을 입증하기도 좋아한다. 각자 하나같이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대화를 할 때 내 얘기를 하기 위해 상대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인 적이 얼마나 있는가? 상상 속의 공정한 관찰자는 당신의 대화 스타일을 어떻게 평가할까?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면, 대화하는 행위가 상대의 애기가 끝나기 무섭게 내 얘기를 쏟아내는 힘겨운 운동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추는 춤으로 바뀌게 된다. 서로 경쟁하듯 내뱉는 독백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진정한 대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힘겨운 운동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추는 춤이라는 표현이 좋습니다. 운동하기 참 힘듭니다. 그렇지만 준비운동을 천천히 하면서 몸과 마음에 리듬이 같이 움직이면 힘도 덜 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어울려 추는 춤이 됩니다.
혼자 하는 운동도 준비운동이 필요하고 리듬을 타야 합니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있는 대화는 더 힘듭니다. 힘겨운 운동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추는 춤으로 만들려면 기다려줘야 하고 응원해줘야 하고 같이 연습을 해야 합니다. 리듬이 잘 안 맞을 때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공정한 관찰자를.
아담 스미스님 같은 분들도 보통사람들이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말하기를 조심하고 듣기가 힘들었고...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관찰자를 만들어 자신을 관찰하려고 했을까요?
욱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해보려고 합니다. 나의 조력자인 관찰자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이번 게임 져도 되는 거지...지는 것이 이기는 게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