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나의 수행 (밝음과 강함을 찾아서)
어떤 수행
수행이라고 하니까 괜히 대단해 보이고 뭔가 있어 보이는데 그냥 하루 하루 살면서 아무 기준도 없이 살면 그러니까 나름대로 기준을 삼을 것을 찾고 있습니다.
오체투지 같은 고행은 너무 힘들 것 같고,
매일 명상과 기도는 나에게 너무 정적이고,
누구를 믿고 따르는 것도 청개구리인 나와는 안 맞고,
그래도 제일 마음이 가는 수행방법은 달마대사가 시작했고 육조 혜능스님이 조계산에서 득도를 했다고 해서 조계종으로 불리는 선불교 즉 선종이 좋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선문답이나 하고 놀기만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공부도 게을리하지는 않을 겁니다. 도올 선생님 왈 '공부가 깨달음을 주지는 않지만 공부를 게을리 한 구도자가 깨달음을 얻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심히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지 않는 인간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깨달음 = 열심히 + 자신만의 수행방법 (행동과 선택)
나에게 깨달음은 내 자신을 알게 돼서 편안해지는 겁니다. 편안하다고 공포나 불안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행복도 불행도 공포나 기쁨도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선불교 (선종)의 파격적인 수행방법
선종에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 (直指人心 見性成佛)'을 종지로 한다. 자기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서 자기 성품만 본다면 곧 부처를 이룰 수 있으며, 자기 존재의 근본을 꿰뚫어 주체를 회복하면 곧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의 부처는 무량한 공덕을 갖고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격화된 존재이지만, 선에서는 자기부처를 보도록 한다.
그리고 부처님의 사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서 수많은 경전의 문자를 통하지 않고 대화를 통하여 간단하게 도를 전달하는 새로운 방법이 이른바 '선문답'이다.
또한 선불교에서는 '공안'이라는 수행방법을 사용한다. 구체적인 인간의 삶과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불교는 무의미하다고 보았으며 그러한 삶에 대한 문제의식이 곧 '공안'이다. '화두'라고 하기도 한다.
선가에서는 고도의 논리적 교습보다는 일상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그 삶의 본질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백장 회해선사는 인간의 노동을 중시하여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등의 규정을 제정하여 수행의 목적과 현실의 삶이 분리되는 것을 막기도 했다.
혜능 (慧能, 638~713)의 삼무사상
혜능의 삼무 (三無)는 무념 (無念).무상 (無相).무주 (無住)인데, 이는
육조혜능 스님이 설한 내용을 담아놓은 육조단경 (六祖壇經)의 정혜품 (定慧品)에 나옵니다. 혜능은 삼무(三無)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선지식아, 나의 이 법문은 위로부터 전해온 것으로 먼저 <관념 없음 (무념: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고, <모양 없음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 (무주:無住)>으로 본(本)을 삼음이다.
무상(無相)이란 것은 모양을 떠남이요,
무념(無念)이란 것은 생각에 생각이 없음이요,
무주(無住)란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세간의 선(善)과 악(惡),
좋다(好)거나, 추하다(醜)거나 내지 미워하고 친하다는 것과 말로 윽박지르고
속이고 싸울 때라도 모두를 아울러 공(空)하게 하지 않음이니,
만약 앞 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뒷생각이 생각에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면 이를 계박(繫縛)이라 하니, 이것을 머무름 없음 (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는다고 한다."
무념이라서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한가지의 관념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이해했고, 무상은 한가지의 상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고, 무주는 한곳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윤회가 있었으면
이번 생에는 나라는 사람의 경험과 깨달음 밖에는 얻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즉 나의 밖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완전히 이해하거나 경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수가 좋다면 나와 다른 사람과 비슷하거나 같은 것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부분적 경험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알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리 지혜가 쌓여도 세상에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항상 불안할겁니다. 항상 지는 게임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알려고 시작한 삶은 항상 남는 장사입니다. 이유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어째든 이번 생에는 나만을 이해하고 알고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나는 누구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탐구하고 살려고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항상 옆에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딱 한가지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만 하면 됩니다.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떤 것은 바꿀 수 있는지...하여간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찾고 있던 깨달음인 밝음과 강함입니다. 그리고 밝음과 강함을 찾았던 이유는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덕경 33장: 깨달음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지인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지인자지 - 지혜로운 자라 하면 아는 것이 있는 자이고
자지자명 - 스스로를 아는 자가 밝음을 찾은 자이며
승인자유력 - 승리를 하는 자를 힘이 있는 자라 하며
자승자강 - 스스로를 이기는 자 (자신을 아는 자)를 강한 자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