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희생자의 담당의가 울분을 토하며 올린 글이 화제다. 나도 읽어봤다. 요약컨대 피해자는 세간에 떠도는 정보대로 끔찍하게 살해된게 맞고, 이어서 그 피해 상황을 디테일하게 나열했으며, 끝맺음은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가해자의 처벌이 경감되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어느 의대 교수가 의료윤리 위반이라며 그 담당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만약에, 내가 길을 가다가 어떤 미친놈에게 칼에 수십번 찔려 사망했다고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사건이 너무 끔찍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너무나 억울한 죽음이라서 내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 담당의가 나의 신체를 열거하며 살해 당시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묘사했다면, 이미 망자가 되어 떠도는 내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떨까? 가해자에게 살해당한 것도 존나 억울할테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나는 내 담당의에 대한 원망도 폭발할 것 같다. 좀 더 세게 말해볼까. 미친 가해자가 내게 저지른 것이 육체적 살인이라면, 담당의가 내게 저지른 것은 이미지의 살인이다. 내가 죽임을 당하기 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건 이제 나는 그 담당의가 구체적으로 묘사한 그 참혹한 이미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육체도 박탈당하고, 세상에 기억될 방식도 박탈당한 것이다.
남궁인 담당의는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고 많은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고인이 어디에서 몇 시에 인체 어느 부위를 누구에게 얼마나 찔렸으며, 어느 병원으로 이송되어 몇 시에 죽었는지 알고 있다. 심지어 나조차도 당시 확인하지 못했던 CCTV나 사건 현장 사진까지 보도됐다. 그러기에 이제 나는 입을 연다." 라면서 밑밥을 깔고 글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언론의 보도 윤리는 세월호를 겪은 후에 모두가 알듯이 수준 이하다. 이미 희생자의 프라이버시가 충분히 침해될 만큼 언론에 공개되었으니 담당의인 나도 까겠다라는 발상, 참 대단하다. 그리고 담당의가 디테일하게 나열한 그 묘사는 그 이전의 어떤 언론이 공개한 정보보다 사람들에게 자극적이고 강력한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그 글은 희생자 프라이버시 침해하기의 화룡정점이었다. 강서구PC방 희생자의 이미지는 이제 그 담당의의 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정의되었다.
남궁인 담당의는 자신의 자극적인 폭로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가해자의 처벌이 경감되는 사회적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담당의의 폭로가 있기 전에도 이미 충분히 그 사건의 잔인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희생자의 뼈까지를 언급하는 글을 쓰지 않더라도, 충분했단 말이다. 최대한 건조하게 언급만 하고 심신미약의 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뤘어도 '담당의'라는 포지션이 주는 효과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묻고 싶다. 꼭.. 그랬어야만 했습니까..
쓰고보니 또 익숙하고 항상 되풀이되는 주제구나. 의료윤리, 보도윤리를 포함하는 '재현의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