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농구를 하러 가까운 곳에 있는 모교를 놀러간다. 오늘 모교에 놀러 갔다가 우연찮게 미대 학부생들의 수업현장을 엿듣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 앞에 쭈삣쭈삣 서서 모든 질문을 받아내야 하는 일명 '크리틱 수업'을 하고 있었다. 관객의 반응을 고려한 작품이었나요? 디스플레이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하셨나요? 그냥 자기가 좋아서 만든 것이 작품의 이유인가요? 따위의 질문을 받아내고 있는 예비 작가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왜 예술대학의 크리틱 수업은 마치 국정감사나 청문회의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일까? 이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데에 과연 필수적인 것일까? 왜 질문자는 "저는 당신의 작품이 잘 이해가 안 가요." 라고 말하는 대신에, "관객의 반응을 고려하셨나요?" 라고 애둘러 표현하는 것일까? 하물며 과연 관객의 반응을 고려하는 것이 작가로서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라는 물음표들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여전히 농구공을 들고 있는 채로. 이 세상 모든 크리틱 수업은 은은한 음악과 노란 조명이 있는 공간에서 맥주라도 한 잔 앞에 두고 진행하도록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
어떻게 하다보니 그 수업의 학생들과 뒷풀이 2차까지 가게 되었다. 심지어 같잖은 선배 가오를 잡기 위해 카드를 쿨하게 긁는 대신에 나는 당당하게 후배들에게 얻어먹었다! ㅋㅋ 아무튼, 내 테이블 앞에 앉은 어떤 학생과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어떻게 보았냐며 물었고 나는 내 감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외국을 연상시키는 힙한 문화를 얄팍한 붓터치로 흉내낸 것 같다. 라고 말을 했다. 그는 재빨리 수긍했고 다음에는 자신이 지향하는 그림의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감성을 이론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뭐 어쩌고였던 것 같다. '동양' 이라는 거대 서사가 등장했을 때부터 내 눈의 초점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듣고 몇 번 끄덕이긴 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진지한 눈빛을 유지하고 있는 그에게 나는 빨려들뻔 했다. 하지만 나는 이윽고 말했다. 당신이 하는 말들을 응원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동양의' 어쩌고 하는 것은 내 이슈가 아니라 더더욱 모르겠다. 라고.
이론과 교수님이 누누이 하셨던 말씀이 있다. 작가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작업의 케이스 스터디를 역사적으로 훑어내야 하며, 자신을 미술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포지셔닝 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라고. 반박할 수 없는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대화 앞에서 또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애꿎은 빈 잔만 들이키게 된다. 그게 말이지. 그런 말들이 말이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면서도 굉장히 허망한 말이기도 하지. 그게 뭔가 싶어. 과연, 작가의 작업이 그렇게 탄생하는가 싶어. 적어도 나는 아닐걸. 그리고 거대 서사를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극히 의심하는 병을 가지고 있어 나는. 오늘 내 인상에 남은 것은 그 친구의 말이 아니라 그 친구의 고요하지만 강렬한 눈빛이었고, 격정적인 감정을 차분한 문장으로 정리해내는 말투였다. 미안하지만 말의 내용은 벌써 까먹었다. 하지만 표정과 말투는 오래토록 남는다. 내가 대상을 기억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