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미국 드라마가 이룬 최고의 성과중 하나로 ‘How I Met Your Mother’(이하 하와맷)의 종영을 들고 싶다.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드인 “프렌즈”의 정식 후계자임을 지칭하는 이 드라마는 하드팬과 소프트팬을 골고루 두고 10년간 인기리에 방영되며 그 대장정을 마쳤다.
드라마의 시작은 이러하다 2030년, 주인공인 테드는 10대 중반 정도로 추정되는 아이들을 앉혀놓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부터 내가 너희의 어머니를 어떻게 만났는지 말해주마.”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간은 2005년(1시즌의 방영시기)으로 플래쉬백 되며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얼핏 보면 짧게 끝날 이야기지만 테드는 이 이야기를 온전히 구성하기 위해, 아니 이 결말에 닫기 위한 모든 이야기를 해나간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가졌던 상황과 마음가짐과 자신 인생 속, 사랑의 역사에 관해 정말로 필요한 모든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장정 동안 총 9시즌, 현실에서의 10년이라는 시간이 소모되었다.
세상에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긴 시간이 이야기에게 더해주는 미덕은
첫째로 성급하지 않게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다. 흔히 빼먹거나 넘어갈 수 있는 디테일 하나까지 전달하면서 단순한 짧은 한 줄의 이야기가 주는 감정의 단편이 정말로 많은 내용을 바탕으로 한 굵직한 한방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정’이다.
말하자면 시청자가 극을 시청하는 그 시간을 통해 이야기와 인물들에게 드는 친밀감이다.
같은 이야기라도 어딘가에 사는 아무개의 경험과 내 주변인 경험은 감정이입이나 흥미도 면에서 비교할 바가 아니다. 10년간 매 시즌 마다, 매주 20분씩 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이 친구들이 실제로 내가 아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게 된다. 방영시기 중반이 넘어가게 되면 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사소한 습관과 인생사에 대해 실제 주변 사람만큼이나 정통하게 되고, 그 점이 바탕이 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되거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극 중의 캐릭터가 느낄 감정을 훨씬 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프렌즈’가 그랬고, ‘섹스 앤더 시티’가 그랬다.
물론 짧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길어지면 지루해지거나 늘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와맷은 이 점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선 하와맷은 시트콤이다. 큰 줄거리를 따라 타고 가지만 매 에피소드 마다 웃음코드를 비롯한 단편 하나하나로써의 매력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와맷이 늘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세월의 이야기들이 결코 결말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일 따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티븐 잡스는 이런 말을 했다. “journey is the reward” 하와맷의 결말, 즉 주인공이 아이들의 엄마인 ‘그녀’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과정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여정동안 만나는 수많은 연결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관계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를 섭렵할 수 있으며 더욱이 매력적인 점은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청자들은 언제 결말에 도달할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매번 지금 주인공이 만나고 있는 여자가 과연 ‘그녀’일 것인가. 아니면 단지 그녀를 만나는 과정에 스치는 인연에 불가한 것인가 하는 극중 캐릭터의 고민을 정말로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내 함께 공유하게 된다.
자, 매 순간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 드라마를 따라 우리는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우리는 결국 이야기의 끝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 이야기는 영원히 발하지 않을 가치로 남았다. 누군가에겐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었고 누군가에겐 사랑과 관계에 관해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준 놀라운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매력들은 아쉽게도 한국드라마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제작환경을 비롯한 기타여건들이 한국에 시즌제 드라마의 적극적인 도입을 아직은 쉽게 허락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간혹 단일 시즌으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장수한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드라마들은 하고 싶은 거대한 이야기 중에서 눈물을 머금고 방송분량에 맞춰 도려내야 한다.
반면 미드의 마법은 이 ‘시간’을 통해 구현된다. 시즌제로 진행되며 비교적 탄탄한 시나리오와 제작환경을 갖추고 있는 미드는 비교적 많은 시간을 갖고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우리가 미드를 보는데 에는 더 이상 큰 장벽이 있지 않다. 접근성이라는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요즘, 시청자는 쏟아지는 해외드라마와 싸우는 국내 웰메이드 드라마들의 고군분투 속에서 즐거운 고민에 빠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