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전쟁 (Currency War) (1)

terryr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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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독일

3년전
집한채를 살 수 있는 가격: 2000만 마르크

3년후
빵한덩이를 겨우 살 수 있는 가격 : 2000만 마르크

무엇이 이토록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했을까요?

1918년 11월 11일, 제1차세계대전은 종전을 하게되고 패전국인 독일은 1919년 6월 28일 파리강화회의에 따라 식민지를프랑스에게 넘기고 영토의 13%를 잃게됩니다. 영국과 프랑스에 징벌적인 손해배상 또한 지급하게 됩니다.

이에따라 독일은 자국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돈을 마구마구 찍어냅니다. 일본과 미국이 양적완화라고 포장하고 경기침체시기 때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돈을 많이 찍어서 마르크화 가치를 떨어뜨리면 다른나라 대비 독일 상품의 가격이 저렴해지고 투자도 늘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미처 부작용은 알아차리지 못한 독일정부.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어제 1마르크로 빵 한 덩어리를 샀는데 오늘은 빵 한덩어리를 사는데 10마르크가 들게 됩니다.
일찌감치 마르크화를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귀금속으로 바꾸어 놓은 부자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로 완전히 파산합니다. 집에있는 생활용품들을 내다 팔고 피아노가 화폐 대용으로까지 사용됬다고 합니다. 1922년 인플레이션은 통제불능 수준인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바뀌었고 이 당시 $1 USD가 4조2000억원 마르크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양심적인 식당은 음식값을 선불로 받았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가격이 올라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폐를 담뱃불로 쓸 만큼 지폐가 흔해지고 지폐의 가치가 떨어져 독일 정보는 대체통화인 랜덴마르크를 발행하였는데 1렌덴마르크가 1조 마르크였다고 합니다.

이 사태에 놀란 유럽은 종이돈의 가치는 금에 묶어놓는 금본위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합니다.
금본위제는 간단합니다.

금 1kg당 300 영국파운드로 고정해놓고
금 1kg당 1000 독일마르크로 고정해놓으면
300 파운드 = 1000 마르크가 됩니다.

하지만 금본위제가 아무탈 없이 흘러가려면 나라간 금의 양의 변화과 자유로워야 하는데 전쟁이 끝난 후 상당한 금은 미국으로 유입되어 버렸고 세계의 눈부신 산업화에 따른 교역량의 규모가 급격히 늘면서 금의 공급량이 모자랐습니다.

각 나라들은 이에 따라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과 다른국가의 통화를 함께 보유하도록 한 금환본위제를 채택합니다.

다음글에서는 금환본위제와 어떻게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P.S. 1923년에 암호화폐가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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