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계획을 세우는 중에 2019년에는 우리 가족도 미션, 비전, 핵심가치를 세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 어느 날 아내가 우리 가족의 비전을 세우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무척 기뻤고 좀 조용한 시간에 아내와 둘이서 대화를 하면서 함께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식체인지 몸살인지 갑자기 몸이 확 안 좋아져서 병가를 내게 됐고, 소중한 휴가에 아프다고 드러누워 있긴 아까워서 우리는 그날 조용한 카페에서 일종의 웍샵을 하게 됐다.(뭐 이딴 전개가..)
아침에 간단히 웍샵 준비를 했다. 일단은 우리 가족의 현재 모습에 대해 알고, 미래의 모습에 대한 기대를 나누다 보면 어떤 것을 강화하고 어떤 것을 약화시켜야 할지에 대해 공동의 이해를 갖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거기서 비전이나 핵심가치가 자연스럽게 도출될 것 같았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한 뒤(식체라며..) 근처의 조용한 카페로 향했다. 아내가 소개를 받았던 곳인데 no-kids zone이라 아이들과는 갈 수 없었던 곳이라고 한다.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맛있는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며(식체는요?) 테이블에 도화지와 포스트잇을 늘어놓았다.
포스트잇을 사용하는 걸 번폐스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누가 회의에서 포스트잇을 꺼내면 '또 푸닥거리 한 판 하는구나...'하는 선입견이 생긴다는 걸 고백한다. 하지만 실제로 적어 보지 않으면 자기 안에 있는 생각을 제대로 깨닫기 어렵다. 이 날도 생각할 땐 몰랐지만 적다 보니 깨닫게 된 것들이 많다. 적는 미디엄으로 굳이 포스트잇인 이유는 여러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데 있어서 공정한 turn-taking이 일어나게 하고 아이디어의 분류와 종합이 용이하다는 장점은 대체하기 어렵다.(나무야 미안해)
우리 가족의 현재 모습을 돌아볼 때 아내와 나에겐 기쁨과 흐뭇함, 아쉬움과 염려 같은 감정들도 교차되고 평소엔 잘 나누지 않던 종류의 풍부한 대화도 일어났다. 이 그림은 한편에 세워 두고 이번엔 각자가 꿈꾸는 우리 가족의 미래를 볼 차례다.
이제 우리는 두 장의 그림을 얻었다. 현재와 미래의 우리 가족의 모습이다. 이번에는 우리 가족의 비전을 정리하기 위해 그것들 간의 연결성을 생각해봤다. 우리는 행동할 수 있는 비전을 원했기 때문에 무턱대고 환상적인 미래를 그리기보단 지금 우리 가족의 모습에서 자연스러운 stretch로서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의 우리 가족을 살펴보고 서로 상관있는 각 묶음들을 같은 알파벳으로 마킹을 했다.
이렇게 놓고 보니 가족을 든든하게 지지해주는 기둥이 세워진 것 같았다. 사실 세워졌다기보단 발견되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는 이런 걸 '가훈'이라고 불렀구나 싶었다. 나에게 가훈, 사훈 같은 건 왠지 듣기만 해도 활동성이 없고 죽은 개념인 것 같은 인상이 있다. 죽은 가치와 살아있는 가치를 결정하는 건 무엇을 가치롭게 여기느냐를 정하는 데서 오지 않고 그것을 가치롭게 여기기 때문에 어떤 실행들이 나오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나는 이날 후로 아이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 아이에게 유감을 표시하는 근거를 우리 가족의 핵심가치에서 찾았다. 그렇게 일관된 피드백이 주어지기 시작하면 아마도 우리는 좀 더 자기목적적인 가정 환경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겼다. 우리는 이렇게 꼽은 우리 가족의 비전과 핵심가치를 정돈해서 거실 벽에 붙여두었다. 아린이는 그게 뭔지 물었고 아내는 차근히 설명을 해주었다.
최적 경험을 유발하는 특정 가정 환경 유형의 특징을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명료성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명료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족의 상호 작용에서 목표와 피드백이 명확하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최인수 역, 한울림, 2004, 1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