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영화 기생충을 봤다. 그동안 친절하게도(?) 나에게 스포한 사람이 없어서 아주 무결한 상태로 보았다. 잔인한 씬을 잘 못 보는 내게 몇몇 장면들이 좀 힘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잘 만들어진 영화라 생각해 처음 보고 한 번 더 보았다.
한국에 있을 때 사회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진 편이었기에 개인적으로 영화 내용(빈부 격차, 권력 구조 등등) 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그보단 다른 몇몇 측면에서 흥미를 느꼈는데, 그 중 하나는 주변에서 봐 온 기생충들을 상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화의 누구누구를 특정하는 게 아니고,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다 넓은 의미의 기생충들 말이다. 오히려 내가 떠올린 그들과 영화 속 인물들과는 별 관련 없다고 말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기생해야만 생존 가능한 그들에게서는 늘 기생충 냄새가 풍기는데, 정작 자신들은 그 냄새를 잘 숨긴다 여기는 듯 보인다. 아무튼 그들은 서서히 또는 급진적으로 자기 숙주를 잠식해가고, 숙주를 대동하며 대인관계에서 숙주 아닌 자신이 갑으로 보이길 바라기 때문인지 늘 스스로를 분칠한다.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그들은 강력한 착각 속에 살게 된다. '내 돈 내 돈, 니 돈도 우리(라고 말하고 내) 돈', ‘나 정도 되니까 이 짓도 가능한 거다’ 같은(ㅋㅋ..).
항상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사회적, 성적 관심과 인정을 요하고, 손 끝을 희한히 놀리며 끊임없이 다른 숙주를 물색한다. 신기하게도 이게 먹히는 얼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대개 자신의 동물적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렇다.
나는 사람 사귈 때 편견을 안 갖지만, 기생충 냄새는 그와 다른 문제이다. 이 냄새를 풍기는 사람에겐 즉시 차단 태세가 된다. 날 보호하기 위해선 당연한 처사인 듯 하다.
간혹 그 방어벽을 눈치 빠른 기생충은 알아 채어 소음이 나기도 한다. 이미 세상이 자기 중심인 것만 같은 기생충은 자기에 대한 거부 내지 무관심을 참지 못한다. 그 반응은 그 혼자 붉을락 푸르락 우울증이다 뭐다 다양한 발작으로 나타난다. 그러다 자신의 추악한 면모를 감싸기 위해 또는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주변에 거짓말을 꾸며내기도 한다. 그들에게 거부를 표할 때 또 자주 관찰되는 반응 양상은, 동성 기생충들에게선 '내가 이뻐서 경계하는구나', 이성 기생충들에게선 '내가 뭐가 모자라서, 나도 싫었거든' 등인데, 왜냐하면 그들에게 모든 이슈는 성(性)으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그런 몸부림들로부터 더욱 강하게 풍겨 오는 기생충 냄새의 유효 사거리 안에 있으면 상당히 메스껍다. 영화를 보는 동안 그 냄새들이 다시 떠올랐다.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상대방 의사, 최소한의 도리 따위 개의치 않고 물불없이 매달리는 벌레들에게는 인간성 과/또는 뇌가 부재하다. 나는 그냥 그들만큼은 같이 어울리기 싫었다. 지금도 싫다. 그냥 자기들끼리 뒹굴며 잘 살고 멀쩡한 사람들은 가만 두면 좋겠지만 물론 안 그럴 것이다, 그들 눈에도 멀쩡한 사람들이 더 좋아 보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