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하반기부터 공무원과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하라고 지시했다. 출신학교, 신체 조건 등을 기재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공정하게' 채용해야 한다는 좋은 취지를 가진 제도이다. 이후 효과를 인정받으면 사기업까지 확장시키려는 계획이다. 이 발표가 나온 후 '블라인드 채용'은 핫 이슈로 부상했다. 기재하지 않는 여러 정보 중 특히 '학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출신학교로 차별받지 않으니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학벌도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는 정보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정책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다. 명문대생이 블라인드 채용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면 자신의 학벌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적폐로 취급당했다.
'실력으로 공정하게'
좋은 취지이다. 자신의 능력을 단순히 출신 학교로 입증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나름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그 학교의 타이틀이 내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필요한 능력을 갖춘, 가장 적합한 사람을 채용하겠다는 취지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정한 인재 선발이 '블라인드 채용'으로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블라인드 채용이 가져올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는 말은 곧 '시험을 통해 선발'하겠다는 말과 같다. 면접을 본다면, 포트폴리오를 본다면, 에세이를 본다면 결국 '블라인드'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같은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점수에 따라 선발하는 것. 머리 속에 한 가지 시험이 떠오른다.
'수능'
모든 학생들이 12년 동안 '수능'이라는 하나의 시험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고, 이로 인한 병폐를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12년 동안의 노력을 단 하루의 시험으로 평가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능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탐구한 학생보다 학원 뺑뺑이를 돌면서 국영수 공부 점수를 올린 학생이 진학을 더 잘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수능은 가장 공정한 시험같지만 수능만으로 '해당 학과에 가장 적합한 인재'를 가리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모든 걸 가리고 공정하게 뽑는다는 말은 곧 시험을 치르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과연 그 시험이 직무에 알맞은 사람을 선별해낼 수 있는가'이다. 전문적으로 그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다. 아마도 그 시험을 대비시켜주는 학원도 생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원자들은 직무에 대한 역량을 기르기보다는 '시험을 잘 보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직무 역량을 정말 잘 반영할 수 있는 시험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필기 시험을 통해 깊이 있는, 실무적인 내용까지 다룰 수 있을까? 그것도 대규모 공채일텐데. 결국 취지와는 다르게 직무에 대한 관심도, 직무 역량과는 상관 없이 그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은 사람이 채용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사실 공무원, 공공부문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건 비교적 반발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은 이미 시험을 통해 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면접의 과정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을 열어서 선발하기 때문에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해 달라지는 점이 사기업에 비해 적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제도가 사기업까지 확대될 수 있을까? 그것을 넘어서 '공정한 선발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가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블라인드 채용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모든 사람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출신 학교가 다르니 학벌을 보는 게 공정하지 않아서 학벌을 지웠다. 학교마다 학점을 주는 방식이 다르고 다른 대외 활동을 하다보면 학점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 학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으니 학점을 또 가린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공개할 수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다. 이 사람이 일에 대해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이 사람이 일과 관련된 활동을 얼마나 해왔는지 역시 공개하면 공정하지 못한 정보가 될 것이다. 이렇게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가리고 오직 '시험'에만 의존해서 선발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무원이나 공공부문은 정기적으로 공개채용을 하지만 사기업은, 특히나 소규모 사기업들은 공채를 열 여력이 없다. 그리고 공채를 연다 하더라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 나설 것이다.
학벌주의 타파는 적극 찬성한다. 능력도 없이 그저 학벌만으로 자기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걸 가리고 '시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과연 진짜 '공정함'을 실현하는 길인지 우려가 든다. 오히려 모든 정보를 오픈한 상태에서 경쟁하는 게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인재를 선발하는 사람은 모든 정보를 고려해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채점해서 점수 높은 사람을 뽑는 것보다는 훨씬 훨씬 훨씬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시험이 손쉬운 휴리스틱인 것은 맞다. 그렇지만 휴리스틱으로는 good solution을 얻을 뿐 optimal solution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모든 정보를 오픈하는 게 더 안전한 경우가 많다.
정말로 공정한 방식으로 선발한다면 정보를 가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채용의 방법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채용을 하는 사람들의 평가 방식이 공정하게 바뀌어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