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는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발터 벤야민)에 대한 논의, 여성에 대한 사회의 성차별적인 시선이 다긴 누드화, 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유화, 그 유화와 소유함으로써 어떤 가치를 획들할 것이라고 말하는 광고와의 유사성을 말한다.
지금도 참 보수적인 미술사 및 미술비평의 세계에서 1970년대에 이런 의견을 BBC 에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사실 누드화나 유화를 아름다움의 관점에서만 바라봤던 내게는 하나같이 충격이였다. 누드화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여인들의 표정이 현대의 포르노 등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여자가 시선의 대상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인상깊었다. 특히 요새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은 여전히 “욕망하는 여자”에 대한 익숙치 않은 시선이다. 같은 상황에서 남자가 대입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그리고 스스로 TV를 보지 않게 된 계기는 광고에 의한 도배라는 생각이였고, 이때 소비를 강요받는다는 느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광고와 유화가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다는 점 역시 흥미로웠다. 유화는 사유재산에 대한 찬양에 사용되었다. 즉, 당신이 소유한 것이 당신을 대변한다는 의미였다. 광고가 동일한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현재로 돌아와 보면 지금 우리는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SNS로 동일한 맥락이 되어가지 않나 싶다.
아래는 존버거가 언급한 작품들과 코멘트로 인상깊은 것만을 골랐다.
프란스 할스 <자선 요양원의 이사들> ,<자선 요양원의 여이사들>
자본주의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난 새로운 인물유형들과 그들의 표정을 최초로 묘사한 초상화
페테르 루벤스 <모피를 걸친 엘렌 푸르망>
작가와 아내와의 시간과 경험을 포함하고 있다. 엘렌 푸르망의 벌거벗은 몸은 누드의 일반적인 관점을 깨고 그녀가 특별한 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