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어쨌든 이 수업의 시험범위는, 조신. 정시자전. 취유부벽정기 조금, 이었는데 난 '조신'이 정말 좋다. 꿈 속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지겨운 마음에 아잉 나 돌아갈래, 를 씨부리는 양소유보다는 애새끼 굶어죽어 길 옆에 묻고 구걸하러 나간 자식 개에게 물려 아프다고 빽빽대는 모습을 보고 눈물 수갈래를 흘리는 조신이, 그래서 머리랑 수염이 다 하얗게 변해버린 조신이 등장하는 조신전이, 좀 더 그럴 듯한 느낌이거든. 심지어 초등학교 때 구운몽 독후감을 쓰면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이제 됐으니깐.' 이라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라고 썼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난 그 때도 이해 못 하는 게 참 많았나보다.
정시자전은 약간 난해한데.. 그래도 잘 해냈다. 고사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 한문은 고사를 잘 알아야 이해가 쉬운 듯 하다. 아는 걸 밑천삼아 자꾸 익히고, 또 그걸 밑천삼아 익히고... 돈 놓고 돈 먹듯, 지식 놓고 지식 먹는 건가..
취유부벽정기는 묘사에 약한 나에겐 치명적인 작품이다. 사실 내가 사회학과를 생각한 이유 중 나름 결정적이었던 게, 내가 그리 감성적이지도 않고, 글을 잘 못 읽고 못 쓴다는 .. 결정적인 게 세 개나 되는군.... 어쨌든 그런 이유들이었는데, 특히 글을 잘 못 읽는다는, 즉 이해를 못한다는 게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줄거리 요약은 잘 읽지만 전문을 읽고 특히 섬세한 비유들을 읽으면서 마음의 울림을 느끼고 그림같은 풍경을 머리에 펼쳐놓는, 따위의 일은 정말 못하기 때문에 (아마 내가 '개미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런 듯 하다) 취유부벽정기는 어렵다. 회칠한 성가퀴에 달빛이 아른거리는데 난 도대체 그런 풍경은 머리 속에 그려낼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내가 감성적인 인물이 아니라 지극히 감정적인 인물이라는 건 전공을 선택할 당시에도 알고 있었나보다. 제길.. 감정적인 게 사회학에 더 치명적이라는 것까지는 몰랐나보군.. 아니 사실 감정적인 사람은 공부랑 안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예술에 어울리지도 않지. 역시 놀고 먹는 거.... 짱이야...놀고 먹는 거... 휴학생 최고..만세 만세 만만세.....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