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문뜩,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문이라고 생각해본다. 예전에는 그 문이 닫혀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이나마 그 문을 살짝 열어 광활한 바깥 세계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우주를 본 원숭이가 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나는 경외감과 동시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 공포감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기에, 과거의 내 삶 그리고 그 삶을 이어나가는 장소들 또한, 충분히 나에게는 크고 복잡했다. 내 두 손 그리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정말 끝도 없이 많다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고, 때로는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알 수 없는 행복도 느꼈다. 그런데 작년의 나는, 퍼즐을 다 맞추지 못하고 다른 퍼즐 게임을 찾는 사람처럼, 이곳으로 왔다. 처음 퍼즐의 조각이 다른 게임 퍼즐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첫 번째 게임이 지루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새로운 퍼즐게임은 더 커다랗고 더 복잡한 퍼즐이다. 일단 퍼즐을 맞추려면 조각이 필요한데, 그 조각마저 찾지 못하는 기분이 들 때도 많다. 2차원의 개미가 3차원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때로는 내가 이 세계의 2차원 개미가 된 느낌이다. 공허함을 채우러 왔다가 더 큰 공허함을 맞을 때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살던 세계는 모범답안이 있는 세계였다. 다른 아이들은 앞다투어 퍼즐을 맞춰가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른들은 답을 맞춘 아이에게는 달콤한 사탕을, 뒤처지는 아이에게는 "왜 너는 다른 애들처럼 똑똑하지 못한거야" 라고 꾸짖음을 준다. 그런 것들이 싫었다. 심지어 퍼즐을 먼저 맞춰가는 아이들은 어른이 된 척을 하며, 다른 아이를 비웃기도 했다.
새로운 삶에서 비참한 순간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곳 아이들은 답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행복의 기준이 퍼즐을 맞추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자신의 퍼즐을 맞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퍼즐을 돕기도 했다. 이곳에서 나는 이방인, 속 좁은 사람, 다른 존재, 동화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때때로 그런 것들을 느끼는 데는 위와 같은 이유가 작용한다. 다름. 신세계를 알아가는 사람으로서 정답이 없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정답이라는 것은 내 세계에서 정해놓은 비참한 이데아다.
생각해보니,
먼 바다와 바다와 바다를 건너 이곳에 온 나는 생각보다 훨씬 작은 존재였다.
글, 사진 : @steamfu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