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_ 국사편찬위원회
奉天承運皇帝詔曰, 朕惟檀, 箕以來, 疆土分張, 各據一隅, 互相爭雄, 及高麗時, 呑竝馬韓、辰韓、弁韓, 是謂統合三韓.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及我太祖 龍興之初, 輿圖以外, 拓地益廣。 北盡靺鞨之界, 而齒革檿絲出焉, 南收耽羅之國, 而橘柚海錯貢焉. 幅員四千里, 建一統之業. 禮樂法度, 祖述唐、虞, 山河鞏固, 垂裕我子孫萬世磐石之宗.
우리 태조太祖가 왕위에 오른 초기에 국토 밖으로 영토를 더욱 넓혀 북쪽으로는 말갈(靺鞨)의 지경까지 이르러 상아, 가죽, 비단을 얻게 되었고, 남쪽으로는 탐라국(耽羅國)을 차지하여 귤, 유자, 해산물을 공납(貢納)으로 받게 되었다. 사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王業)을 세웠으니, 예악(禮樂)과 법도는 당요(唐堯)와 우순(虞舜)을 이어받았고 국토는 공고히 다져져 우리 자손들에게 만대토록 길이 전할 반석같은 터전을 남겨 주었다.
惟朕否德, 適丁艱會, 上帝眷顧, 轉危回安, 創獨立之基, 行自主之權。 群臣百姓, 軍伍市井, 一辭同聲, 叫閽齊籲, 章數十上, 必欲推尊帝號, 朕揖讓者屢, 無以辭, 於今年九月十七日, 告祭天地于白嶽之陽, 卽皇帝位.
짐이 덕이 없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만났으나 상제(上帝)가 돌봐주신 덕택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안정되었으며 독립의 터전을 세우고 자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 군사들과 장사꾼들이 한목소리로 대궐에 호소하면서 수십 차례나 상소를 올려 반드시 황제의 칭호를 올리려고 하였는데, 짐이 누차 사양하다가 끝내 사양할 수 없어서 올해 9월 17일 백악산(白嶽山)의 남쪽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定有天下之號曰 ‘大韓’, 以是年爲光武元年, 改題太社、太稷, 冊王后閔氏爲皇后, 王太子爲皇太子. 惟玆丕釐耿命, 肇稱鉅典, 爰稽歷代故事, 另行大赦.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정하고 이해를 광무(光武) 원년(元年)으로 삼으며,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다. 왕후(王后) 민씨 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큰 의식을 비로소 거행하였다. 이에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노라.
一, 朝廷高爵厚祿, 優養臣僚, 原欲其盡忠爲國。 國之安危, 全係官僚之貪廉。 官若奸貪, 則賄賂肆行, 庸惡倖進, 無功冒賞, 吏胥舞文, 小民被害, 政之紊亂, 實始于此。 自本年十月十二日以後, 在京大小各衙門及外觀察、府尹、郡守、鎭衛隊將官竝吏胥、皂役等, 但有貪賂枉法剝削小民者, 照例治罪, 不在赦前.
一, 朝官年八十以上, 士庶人年九十以上, 各加一資.
一, 出駐兵丁, 多有勞苦. 其家口着, 該部厚加存恤.
一, 懷琦抱璞隱逸之士, 堪爲時用, 及武略出衆, 膽力過人者, 凡所在該觀察據實擧薦, 該部覆核徵聘, 以便擢用.
一, 恩詔有免荒地, 有免水旱災傷, 有免民間額賦, 不可再有拖欠。 或輸納已完, 地方官別貢支用, 或侵入私橐, 以致小民虛受拕欠之名, 悉與豁免.
一, 各處無主荒地, 該地方官察明情報觀察, 再加察勘, 果無虛捏, 卽與題免錢糧, 其地仍招民開墾.
一, 文蔭武朝官七品以下, 各加一階.
一, 人命至重, 歷代皆有三覆奏之條, 而失出之罰, 輕於失入. 凡問刑官員, 毋執己見, 毋循賄囑, 務在得情.
一, 謀叛、强盜、殺人、通奸、騙財、竊盜六犯外, 各減一等
一, 各道民人孤貧殘疾無人養贍者, 該地方官加意撫恤, 毋令失所.
一, 凡嶽瀆廟宇有傾頹者, 該地方官估計價直, 報告該部, 及時修葺, 以昭.
一, 各道道路橋梁有毁壞者, 着地方官査明修理, 以利行旅.
一, 詔內各款, 該地方各官俱要, 實心奉行, 務使恩澤及民, 不負朕憫念元元至意。 如沿習故套, 徒以虛文塞責, 該觀察不能覺察, 參奏着內部, 一倂糾參重處.
於戲, 初膺寶籙, 寔荷自天之祐, 渙斯大號, 式孚率土之心。 欲革舊而圖新, 化行而俗美, 布告天下, 咸使聞知.
아! 애당초 임금이 된 것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이고, 황제의 칭호를 선포한 것은 온 나라 백성들의 마음에 부합한 것이다.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며 교화를 시행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니, 세상에 선포하여 모두 듣고 알게 하라."
弘文館大學士金永壽製
홍문관 태학사(弘文館太學士) 김영수(金永壽)가 짓다.
고종황제에 의해 선포된 대한제국 선언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왕국에서 제국으로의 승격을 의미하지만, 실은 그보다 대한민국이란 오늘날의 이름의 원조가 되며, 근대조선이 갖고 있던 고조선에 대한 역사적인식, 그리고 삼한을 비롯한 한국의 한(韓)이란 이름이 조선이란 이름에서 국호로 쓰이게 되는 시작을 말해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의 이름에 대해 설명하는 많은 칼럼에서 ‘반조문’의 일부를 인용하지만, 그 전문은 많이 알려져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반조문은 [조선왕조실록] 고종조에 이상과 같은 전문이 인용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글을 지은 사람은 당시 홍문관 태학사인 김영수네요. 홍문관은 지금의 국립중앙도서관쯤에 해당하는 기관이자 관청이었고, 사헌, 사간부와 함께, 정무수석 정도의 역할도 했으니까, 좀 더 권위있는 자리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태학사(太學士)는 대제학(大提學)이란 이름과도 함께 쓰였는데요, 아마 국립중앙도서관장에 정무수석 겸직 정도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학사에 太가 붙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학사지만 정2품인데, 홍문관 소속 박사(博士)가 정7품이던걸 보면, 오늘날과 학사와 박사가 위치가 다르군요^^
왕국에서 제국으로의 승격이 주는 의미도 중요하겠지만, 그건 그 시대 국제상황을 통해서야 우리가 동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저는 개인적으로 현대 인권중심의 법에서 말하는 삼심제도 혹은 항소, 그리고 무죄추정의 원칙과 유사한 다음의 조항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120년 전의 권위와 권력이 가장 중요했던 왕실에서 이런 조항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이 말이죠.
“사람의 생명은 더없이 중하므로 역대로 모두 죄수를 세 번 심리하고 아뢰는 조목이 있었다.
죄보다 가볍게 잘못 처리한 형관의 죄는 죄보다 무겁게 잘못 판결한 경우보다 가볍다.”
“人命至重, 歷代皆有三覆奏之條, 而失出之罰, 輕於失入”
조선왕조실록, 고종실록 36권, 고종34년 10월 13일 양력, 2번째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자료_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001 是日也放聲大哭 / 이날을 목놓아 통곡하노라 (장지연)
#002 朝鮮革命宣言 / 조선 혁명 선언 (신채호, 1923)
#003 己未獨立宣言書 / 기미독립선언서 (1919)
#004 세계인권선언 /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