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손맛 좋은 어머니의 유전자가 내 안에서 서서히 발현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말이면 요리를 한다. 이제는 칼질을 하는 것이, 육수를 내고 간을 맞추는 것이 몸에 밴 듯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쉐프 수준은 못된다. 난 아마추어다. 그래도 비싼 돈 내고 학원에 간 적도 없고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다. 그냥 혼자서 인터넷에 넘쳐나는 레시피를 뒤져가며 요리를 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내 요리를 꽤 맛있다 하며 먹는다.
그렇게 시작한 요리가 이제는 내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이 됐다. 큰 웍에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서 깔고 손질한 코다리를 얹은 다음 육수를 붓는다. 그리고 새빨간 양념을 듬뿍 넣어 졸이기 시작한다. 코다리가 양념과 섞여 익기 시작할무렵 온 집안에 그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하면 아이들이 식탁 앞으로 모여든다. 흰 쌀밥을 반찬 몇 가지와 함께 놓아주면 아이들은 어느새 한토막씩을 들고 가 어육을 발라낸 다음 밥 위에 얹어 야무지게 먹기 시작한다. 꽤 많은 양이었는데 파 몇 조각과 양념 소스만이 접시 바닥에 남았을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돌아서는 아이들의 만족스런 얼굴을 볼 때 요리는 꽤나 흐뭇한 노동이 된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요리를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존재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먹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요리 역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다듬고 썰고 끓이고 데치는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내면 잔잔한 기쁨이 마음 속에 자리잡는다.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내 손 끝에서 세상에 없던 음식 하나가 탄생한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셰프들이 플레이팅에 공을 들이는지 이해가 된다. 팔아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뭐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었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기에 그럴 것이다. 플레이팅은 단순히 요리의 때깔을 내는 게 아니라 요리의 마침표를 찍는 행위다. 아마추어인 나는 이때 소소한 만족감을 느끼는 정도에 그치지만 전문 셰프들은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요리의 즐거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먹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내줄 때 또 다른 즐거움이 시작된다. 음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은 대단히 정서적인 행위다. 수십 년 동안 남편과 가족의 끼니를 챙겨온 어머니들은 단순히 의무감만으로 요리를 한 게 아니다. 내가 만든 요리를 통해서 가까운 사람들이 포만감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할 때 쉽지 않은 요리의 과정은 또 다른 보상을 받는다. 어머니들은 말했다. 내 새끼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 봐도 좋다고...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정서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특별한 교제의 기술이 없더라도 사람을 초대해 내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나와 그 사람 사이에는 온기가 스며들 것이다. 내 앞에 정성들여 차린 음식이 차려질 때 얼굴을 찌푸릴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쩌면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표현될 수 있는 최고의 호의인지도 모른다.
난 어느 정도 요리 솜씨가 생겼을 때부터 가족이 모일 때면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하는 데 참여했다. 우리 집에서 명절을 치를 때는 물론 간간히 식구들끼리 캠핑을 갔을 때도 찌개나 국물요리는 내가 했다. 이런 행위는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여성분들의 호감을 샀고 명절이 여성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으로 치러진다는 피해의식을 갖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요리는 남자의 일이 아니었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집안에서는 거의 금기사항에 가까웠다. 아직도 아버지 세대 어르신들 중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 일이 난 것처럼 정색을 하는 분들이 실제로 계신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노인들의 수명은 이전 세대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라 해도 좋을만큼 늘었다. 이제는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어머니 세대의 여성분들은 이미 수십 년 동안 남편들의 끼니를 챙겨왔다. 이제 이것이 지겹다고 해도 누가 그 분들을 탓할 수 있으랴.. 그들도 이제는 챙김을 받는 즐거움을 누려보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이제 남성들도 요리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유교적 관념이 남아있는 어르신들은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다. 끼니를 챙겨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동안 이 역할은 대부분 배우자의 몫이었다. 이들은 헌신적인 배우자가 없으면 당장 식생활에서 소외될 처지에 있다. 이들은 챙겨줄 사람이 없을 때 결국 해장국집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팔 걷어붙이고 나서면 요리가 되던가? 먹을 만 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취득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그것은 평소에 꾸준히 해보면서 경험을 쌓아야 할 수 있다.
이것은 여성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 외에도 남성들 자신의 식생활을 위해 좋은 일이다. 기나 긴 인생길에서 언젠가는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혜로운 인생의 한 방편이다.
무엇보다도 요리는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요리의 과정 자체가 즐거움 경험이 될 수 있을 뿐더러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내가 만든 요리를 먹는 사람들은 필경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