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건의 비범성, 인상주의
이 작업은 밀레(Jean Francois Millet, 1814-1875)의 <이삭 줍는 사람들(Des glaneuses)>이다. 질문을 하나 던져 보자. 이 작품이 당대 사람들에 눈에 아름다워 보였을까? 이 작품은 아무런 극적 사건도 없고, 우리가 좋아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없다.
작품에는 농부들 세 명이 달랑 등장하는데, 그마저도 열심히 일하는 장면이다. 여인들의 육체가 세련된 것도 아니다. 작품에는 노동에 특화된 근육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것은 잘 다듬어진 그리스인의 이상적인 신체 비례와도 관계가 없다.
실제로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차분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크기의 작업(50호, 112 x 84 cm)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작품이 의미를 가지는 지점은 이 곳에 있다. 밀레의 작업은 ‘평범함’을 주제로 삼았을 뿐 아니라 베짱있게도, 이것을 커다란 캔버스에 표현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예술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음을 상기하자. 그나마 돈이 조금 있는 상인 집안은 스케치북 만한 크기의 초상화를 소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밀레는 돈 있는자를 위한 작품을 그리지 않았다. 이삭을 줍는 일. 세 명의 노동자가 주인공이다. 밀레는 권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아름다움의 기준을 일상으로 끌어 내려 그것을 예술이라 부른 최초의 화가다.
당대 평론가와 대중들은 밀레를 비웃었다. 아무 주제도, 의미도 없는 그림을 큰 화폭에 담았다는 비평을 들었다. 그의 동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도 밀레와 마찬가지였다. 1855년, 쿠르베는 개인전을 열고자 했으나 갤러리와 살롱이 그의 작품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파리의 한 낡은 건물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개인전의 이름은 ‘사실주의(Le Réalisme), G. 쿠르베 전’이었다. 쿠르베는 자신의 예술 스승은 오로지 자연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연출된 아름다움, 권력 관계를 그리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대중은 여전히 호응이 없었다. 그렇지만 예술가들은 이 전시를 보고 자극을 받았다.
쿠르베의 사실주의 전시 이후, 예술가들은 주류 아름다움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아름답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배가 볼록하고 수염이 기름진 지방 귀족의 그림일까? 양을 끌어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일까? 예술가들은 이제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내려두고 탐색을 시작했다. 쿠르베와 밀레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역사적 그림이나 성서화, 초상화를 최고의 예술이라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반향의 물결은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와 그의 친구들에게 이어진다. 이들은 쿠르베의 지난 작업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퇴색한 회화의 인습을 찾아내려 했다. 결국, 그들은 기존 예술이 진실된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존 예술은 이상적인 환경에서 완성되는 것이었다. 과거 화가들은 빛이 가장 잘 들어오는 날에 모델을 세워 포즈를 취하게 하고 그것을 캔버스에 옮겼다. 다른 날, 정물을 그리기 좋은 날이 되면 그것을 복사-붙여 넣는 식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것은 마네와 동료들에게 '인위적인 술수의 집합'에 지나지 않았다.
마네는 본인이 알고 있는 형상에 집착하여 대상을 미화하는 경향을 탈피하고자 했다. 우리가 옥외에 나가 자연을 볼 때, 각 대상들은 고유한 색깔을 지닌 개별물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서 뒤섞여 훨씬 더 밝은 색조의 혼합물로 보인다. 마네는 이것이 진실된 모습이라 생각했고 화가가 옮겨야 할 궁극적인 미의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적으로 눈은 대조를 통해 사물의 형상을 파악한다. 어두운 면과 밝은 곳 사이를 찾고 그 지점을 경계 삼아 형상을 완성하는 식이다. 때문에 마네는 여인의 옷을 칠흑보다 더 짙게 그렸고, 대조적으로 눈의 일부를 흐릿하게 마무리했다. 코는 제대로 보이지 않고, 꽃은 그 형태가 보일듯 말 듯 하다.
마네에겐 이것이 궁극적 예술이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도 마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함께 발전시켰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을 연구했다. 대상을 아름답다 여기는 찰나의 시간, 그때의 빛, 바람, 환경, 인물의 표정을 옮겼다. 그는 순간적인 양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그림을 그렸다. 실제로 모네의 작품을 보면, 어떤 부분은 빠른 필치로 붓질을 하느라 군데군데 칠이 비어 있다.
비평가들이 모네의 그림을 싫어했던 이유는 불완전한 마무리 때문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이것을 미완성 작품이라 판단했다. 작업은 살롱, 주류 미술에 들지 못했다. 1874년, 모네는 결국 주류 전시를 하지 못하고 친구들과 함께 어느 사진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그는 이 전시에 <인상: 해돋이>라는 작업을 걸었다.
아웃라이어들의 전시는 장내에 웃음거리가 됐다. 당대 비평가였던 루이스 르로이(Louis Leroy)는 이 그림의 제목이 특히 우습다고 생각했는지, 그 전시에 참가한 그룹 전체를 ‘인상주의자들(Impressionists)’라고 조롱섞어 불렀다. 그가 기고한 글의 일부를 이 곳에 옮긴다.
“인상주의자들의 작업을 보면 무엇이 인상주의인지 확실히 알수 있다. 그것은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것과 미숙한 기술에 대한 약점을 비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변명거리가 인상주의라는 것이다. 전시장의 벽지가 그 바다 풍경(인상: 해돋이)보다 훨씬 더 완벽하다.”
우리가 오늘날 사랑해 마잖는 인상주의 화풍은 당대엔 경멸 섞인 용어로 쓰였다. 당신은 어쩌면 당대 평론가들이 바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평론가들만 이런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대중들도 인상주의자들을 비웃고 외면했다.
오늘날 동시대 미술을 향한 우리들의 시선과 어딘가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참고: 현대미술 담론 01). 이것이 비웃음을 많이 살 수록 더 좋은 예술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대게 프로토타입은 도전적이고,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되짚고 싶을 뿐이다. 요즘 평론가들은 비평보단 칭찬에 후하다. 네거티브를 줄여 실수를 면하려는 교훈일까 궁금하다.
시즌 1을 마칩니다. 다음 시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