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 상징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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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100%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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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율리시즈는 르윈의 내면과 여정을 상징합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포크송 가수. 르윈 데이비스의 일주일간 여정을 담은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 대한 상징 해석입니다.

1. 레퀴엠


영화가 시작되면 르윈은 교수형을 앞둔 한 사형수가 부르는 노래 Hang Me, Oh Hang Me 를 부릅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말이죠. 길거리에서 얻어 맞고 골페인 교수 집에서 깨어났을 때 모자르트의 유작 레퀴엠이 흘러 나옵니다. 르윈이 곧 예술가적 삶의 끝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생활을 빠져 나오고 싶어합니다.

골페인 교수의 집을 나오기 전, 동료 마이크와 함께 불렀던 노래 Fare Thee Well 를 틀어 놓습니다. 이 노래는 떠나간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랑 노래입니다. 아마도 르윈은 옛 동료였던 마이크를 그리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중반분에 나오지만 마이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르윈은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영화 중반에 골페인 교수 부인과 싸우는 이유도 마찬가지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르윈이 처음과 달라진 거라곤 이 노래를 장송곡에 이어 다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마이크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됬습니다. 죽음의 궤도를 돌고 있던 한 예술가가 비로소 그 궤도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2. 오디세이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을 담고 있는 서사시입니다.

르윈이 오디션을 보게 되는 라이브 클럽 뿔의 문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꿈이 나오는 문은 두 가지가 있는데 상아의 문으로 나오는 꿈들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사람들을 속입니다. 하지만 뿔의 문으로 나오는 꿈들은 반드시 실현된다고 합니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의 뜻은 증오를 받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내내 르윈은 다른 사람들의 증오를 받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발음은 율리시즈입니다. 영화 후반에 밝혀지는 르윈이 잃어버리거나, 착각하거나, 버리거나, 상처를 주었던 바로 그 고양이(자신의 내면)의 이름이죠.

3. 시지프 신화


오디세우스 아버지는 시지프스입니다. 시지프스는 신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린 죄로 영원히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까지 올려놓는 형벌을 받게 되는 사람이죠. 그리고 영화 전체를 통틀어 도돌이표 같은 삶을 반복하는 르윈의 모습도 시지프스와 닮아 있습니다.

시지프 신화를 쓴 알베르 카뮈는 이 신화를 재 해석해 현대인에게 철학적인 메세지를 전달합니다. 그는 책에서 부조리한 세계 앞에 선 인간에게 세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선택은 자살입니다. 영화 속에서 르윈의 파트너 였던 마이크가 한 선택이죠. 카뮈는 자살은 “삶을 직시하는 명철한 의식에서 빛의 세계 밖으로의 도피하는 이 치명적 유희”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방안은 희망입니다. 그러나 희망 역시 카뮈는 “삶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거창한 관념을 위해 사는 사람들의 속임수”라고 말합니다. 이를 상징하는 캐릭터는 시카고에 함께 갔던 마약을 하는 뮤지션과 이상한 시를 읊는 과묵한 시인입니다. 그들은 과도한 관념과, 희망(마약)에 집착한 나머지 현실에서 타락한 사람들이죠.

여행을 떠나기 전 카페에서 진과의 대화 속에서 르윈은 음악으로 돈을 벌어 안락한 삶을 꿈꾸는 진에게 속물적이라고 말합니다. 감독은 르윈이 미래를 설계하거나 희망을 가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 시킵니다. 영화 내내 희망이라곤 하나 없는 차가운 세계를 겨울이라는 날씨와 함께 보여줄 뿐입니다.

카뮈는 '자살'과 '희망'은 삶을 직시하지 않고 망각과 무(無)로 도피하는 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부조리한 세계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마지막으로 귀결되는 선택은 반항, 자유 그리고 열정입니다. 카뮈는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원히 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리기는 시지프스와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내려는 반항적 의지와 저주를 한 몸에 받아 들어 감수하면서도 미소를 띨 수 있는 삶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이야 말로 그 삶의 위대함을 회복 시킬 수 있다고 말이죠.

4. 수미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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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윈의 마지막 대사는 Au revoir 입니다. 극장에서 봤을 땐 '잘가슈'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번역가의 블로그를 살펴보니 별 뜻 없는 프랑스 인사라 그렇게 번역했지만 다시 그 대사를 번역 한다면 '또 봅시다.'로 번역할 거라고 하네요. 그게 의미를 더 잘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이죠. (번역에 대한 항의를 엄청 들었다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계속해서 르윈이 같은 삶을 반복할 것을 알게 됩니다.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입니다. 계속 이 삶을 살아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굴레가 아닌 삶 그 자체에 의미를 가지는 운명에 대항하는 우리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시간을 기록하는 레코드판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시간 여행에 대한 책이었던 것 같은데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4차원 레코드판 위에 시간이 새겨져 있을 거라는 <인터스텔라> 같은 상상이었습니다.

신은 시간이라는 테이블 위에 우리에 관한 레코드판을 올려놓습니다.

처음엔 어떤 것도 녹음 되어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레코드판에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입니다. 언젠가 마지막 트랙이 끝나고 신을 만나게 되면 우리가 녹음한 레코드판을 선물 받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무한의 시간 위에 앉아 우리의 운명 교향곡을 감상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형편없는 연주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트랙에서는 이전보다는 조금 나은 연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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