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보통 어떤 사람을 내향적이라고 말할 때는 대체로 수줍음이 많고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기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좀 안 좋게 말할 때는 사교성이 떨어지는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최근 방송이나 대중적인 심리학 서적이나 팟캐스트 등을 통해 내향성에 대한 이런 선입견들이 많이 희석되고 있는 게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내향적인 사람들은 사회에서 뭔가 마이너리티의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특히 조직문화가 강한 곳일수록 내향성이 환영 받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돼 있게 마련이죠.대문 이미지 by @gamiee
내향성이란 게 수줍음이나 낮은 사교성과 동의어일까요? 아니겠죠. 내향적인 사람 중에도 수줍음을 타지 않고 사교성도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럼 내향성이 뭘까요?
1921년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칼 융은 심리유형이라는 충격적인 책을 출간했다. 융은 그 책에서 인간성의 중심이 되는 구성요소로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라는 용어를 널리 소개했다. 내향적인 사람은 생각과 느낌이라는 내면세계에 끌리고,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과 활동이라는 외부세계에 끌린다고 칼 융은 말했다. 내향적인 사람은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듯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에 집중하는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사건 자체에 빠져든다.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지낼 때 배터리를 충전하지만, 외향적인 사람은 어울리면서 충전한다. - 콰이어트, 수전 케인, p. 30-31.
이런 개념 틀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융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외향과 내향은 단지 차이일 뿐 성격 특성 간의 우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외향적인 성격에 비해 내향적인 성격이 왜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네요. 이 글에서는 그 궁금증은 잠깐 옆으로 제쳐 놓고 대체 내향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성격심리학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을 정도로 성격에 관한 연구는 방대합니다. 성격을 측정하는 심리학적 도구도 다양하죠. 누구나 한 번쯤 해보았을 MBTI부터 임상/상담 현장에서 흔히 쓰이는 MMPI, TCI까지 다양한 도구가 존재합니다. 인간의 성격이란 것이 워낙에 복잡하고 미묘한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성격 전반을 아우르는 검사를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이에 도구가 개발된 이론적 배경에 따른 성격의 특정 차원을 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연구자마다 내향성에 대한 정의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는 것이죠. 그걸 여기서 다 다루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저는 엑스너라는 미국 사람이 Rorschach Test의 규준을 만들고 해석지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내향성의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내향형인 사람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심사숙고하길 좋아한다. 그들은 생각하는 동안에는 정서를 보류해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기 전까지 행동하는 것을 미룬다. 외향형인 사람은 더 직관적이다. 그들은 감정과 생각을 분리하기 어렵고 결정을 내리는 데 감정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결정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양한 접근을 실제로 시도해 보는 것에 매우 편안해한다. 이러한 두 방식 모두 성인과 후기 청소년기에 보편적이며, 어느 한 쪽이 더 바람직한지를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단순히 일상생활의 대처에 사용되는 매우 다른 심리적 접근법이며, 둘 다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 엑스너 종합체계 4판(1판 1쇄), 윤화영 역, p. 392-393.
이러한 정의는 융의 개념과도 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향형이 행동하기 전에 숙고하는 유형이라면 외향형은 일단 부딪혀 본 뒤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유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다만 엑스너의 정의에서는 의사결정에서 감정의 개입을 어느 정도로 허용하느냐를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내향형은 감정을 ‘보류’해 두고 외향형은 의사결정에서 감정을 적극 활용한다는 차이가 있겠네요.
엑스너는 이러한 내향/외향의 가로축 위에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세로축을 놓습니다. 사분면이 생기는 것이죠.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심리적인 복잡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만사가 다양한 인과와 상호작용의 뒤얽힘인데, 이런 복잡성을 얼마나 허용하고 또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느냐가 내향과 외향 각각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예를 들어 보죠.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애청하는데 이 팟캐스트에서 세대게임이란 책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세대게임의 저자는 청년/기성세대로 세대 간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이미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기성세대의 기득권 때문에 청년들의 삶이 궁핍해져 간다는 주장을 반박합니다. 기성세대 중에도 빈곤층이 많고, 설령 기성세대(특히 노인) 복지에 쏟아붓는 예산으로 인해 청년들의 복지 예산이 줄어든다 하더라도 그 수혜를 청년들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보고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런 이분법적 사고를 부추김으로써 누가 이득을 보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사고를 경계하고 있죠.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낮다는 것, 즉 세상을 매우 자의적인 방식으로 단순화하여 본다는 것은 그 나름의 이점이 있습니다. 빠른 판단이 요구될 때 특히 그렇죠. 누가 내 편이고 누가 적인지 빠르게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상황을 단순화함으로 인해 잃어버리게 되는 중요한 정보들이 너무 많죠. 그 정보들이 첨가되었을 때 완전히 다른 상황 판단을 하게 될 수도 있고요.
내향적이면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선호하지 않는 대신 심사숙고할 수 있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논리적이고자 합니다. 다양한 조건이나 변수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섬세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죠.
외향적이면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숙고하기보다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기를 즐깁니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사고만큼이나 감정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내향적이면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 신중하지 못 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고의 조리가 없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융이 말했듯이 사건 자체에 직접 빠져들어 외부 피드백에 따라 의사결정 및 판단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향적이면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낮은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엑스너는 이를 두고 회피-내향성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엑스너의 말을 직접 들어보죠.
회피-내향성은 사고 지향적이지만, 진정한 내향성과는 실제로 다르다. 그들은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는 동안 의사 결정을 미루는 경향이 있지만, 회피 방식이 우세하면 항상 철저하지 못하고, 개념적 활동을 더 단순화시키게 된다. 그들은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 동안 피상적 수준의 감정을 유지하기를 선호하지만,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에 직면할 때 정서가 사고에 침투하는 데 취약하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논리 체계를 좋아하며, 될 수 있는 한 시행착오적 탐험을 회피한다. 이런 대처 방식을 지향하다 보니 환경이 일상적이고 모호하지 않을 때 상당히 효과적일 수..(후략). - 같은 책, p. 542.
내향적이면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낮은 사람들은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일들에서 나쁘지 않은 대처 효율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복잡해질수록 효율이 낮아지게 마련이죠. 상황이 복잡한데 복잡성에 대한 인내력이 낮다 보니 상황을 단순화시키고, 이는 부적절한 판단의 가능성을 높이게 되죠. 내향형의 강점인 숙고하는 능력이 반감되는 것입니다. 숙고하려 하더라도 사고의 명확성이 떨어져서 결정을 내리지 못 한 채 과도하게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기 쉽습니다. 더욱이 감정을 보류하는 내향형의 특성이 강해짐으로써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좀 경직돼 있고, 대인관계나 일처리에 있어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죠.
외향적이면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낮은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들은 회피-외향형입니다. 회피-외향형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고, 감정에 휘둘림으로써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시행착오적이라기보다 충동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쉽죠. 또한 외향형의 특성인 감정 표현에서의 자유로움이 방종으로 변질되기 쉽죠. 즉 정서 인식에서의 명확성이 떨어지는 데다 이러한 정서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보니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사람으로 보이기 쉬울 것입니다. 외향적이면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처럼 시행착오 과정에서 외부 피드백에 따라 문제를 잘 조율해 나간다기보다, 사소한 일에도 일희일비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향/내향, 경험에 대한 개방성 차원에 따라 성격을 네 가지로 분류해 보았는데요. 사실 외향도 아니고 내향도 아닌 어중간한 유형이 있습니다. 거기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까지 낮으면 일상생활에서 역기능적인 면이 많을 수 있죠. 미운 네 살 아동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빠를까요? 성인이 이런 특성을 나타낸다면.. 다른 사람들의 인내심이 금방 바닥나겠죠.
현상은 이것보다 훨씬 복잡할 테지만, 이런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격 평가에 도움이 됩니다. 단, 개개인이 자라온 배경이나 내력을 고려하여 한 사람의 성격을 세밀하게 스케치하는 과정이 중요할 수 있겠죠.
내향성과 외향성은 각자의 성격 특성과 개인사와 상호작용하면서 극도로 다른 인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여러분이 만약 예술적인 미국인 남자인데 아버지가 여러분에게 다른 ‘거친’ 형제들처럼 축구팀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상황이라면, 부모님이 등대지기를 하고 있는 핀란드인 여성 사업가와는 전혀 다른 내향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 - 콰이어트, p. 3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