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내가 2015년 4월 16일에 썼던 에세이를 찾아 읽어 보았다. 당시 어떤 기사를 보고 분노에 차 적어 내린 글이었다. 내 개인 신상이 그대로 적혀있는 글이기도 했고, 함부로 입 밖에 내기 어려운 글이었어서, 단 한 번도 세상으로 공개해 본 적이 없는 글이었다. 단지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던 친구 몇 명에게만 보여 줬을 뿐이었다.
그치만 참 재미있게도 잘 썼다. 두 페이지 남짓한 그 글은 요즘 쓰는 글에 비해 문장도 간결하고 어휘들도 생생히 살아 있었다. 역시 분노는 창작의 가장 강력한 땔감인가 보다. 아니면, 요새는 너무 많은 언어들을 내뱉은 탓에 문장이 고갈되어 버린 걸까. 남의 글을 표절하지 않으면서, 나만의 표현을 충전시킬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점에서 나에게는 다행인 점 한가지와 불행한 점 한가지가 있다. 먼저 다행인 점은, 문장이 하나 둘씩 떨어져감을 느끼고는 있지만, 글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과학 에세이, 그냥 에세이, 잡생각 등을 대분류로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 모든 연재의 다음글을 정해 놓은 상태다. 지금 예정해 둔 글들을 쓰고 나면 두 달 정도가 훌쩍 지나있지 않을까.
두 달? 아마 아닐껄. 불행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내가 사직서를 내던 2014년 비트코인을 샀거나, 과외비로 틈틈이 번 돈으로 이더리움을 사뒀더라면, 못해도 이틀에 한 번 꼴은 포스팅을 할 수 있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우시안 그래프에서 3시그마 안에 들어와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전업 스티미언이 되지 못한다. 나는 그동안 일주일만에 글을 써올릴 때도 있었고, 어쩔 땐 이주일 만에 글을 올릴 때도 있었다. 다음 글로는 신경과학 번역글이 아닌 내 글을 쓰고 싶다. 병렬적으로 조금씩 써내리고는 있지만, 언제쯤 막간의 여유를 찾아 글을 완결할 수 있을까.
내가 자기소개서를 쓸 때마다 단골로 등장시키는 내 어릴적 이야기가 있다. 10살 즈음 초등학생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동네 보습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그날의 문제를 모두 풀어야 집에 갈 수 있었다. 하루는 아무도 풀지 못하는 도형 문제가 등장했고, 친구들은 그 문제를 선생님께 여쭤 풀이를 듣고서야 가방을 챙길 수 있었다. 친구들은 하나씩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나에게 빨리 질문하고 놀이터로 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만, 나는 묘한 오기가 생겼다. 도형에 보조선을 그렸다 지웠다를 무수히 반복했다. 선생님도 가르쳐주고 싶은 모양인지 기웃기웃 하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호기를 부렸다.
정말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밖은 이미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교실은 고학년의 형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정답을 맞췄다.
무척 어렸을 때의 일이만 지금까지 기억이 나는 이유는, 이 사건이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놀이터의 유혹을 뿌리치고 얻어낸 달콤한 보람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이후로 언제나 어려운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이때를 떠올렸다. 이로써 나는 무조건 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시간의 문제이며, 내 집중력의 문제다라는 마음가짐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이 10살짜리 어린 꼬마가 잘 소환이 안된다. 꼬마야 어딜 갔니. 자꾸 스팀잇이라는 놀이터가 나를 손짓하는데 좀 막아주렴.
끝내 꼬맹이는 등장하지 않았고, 나는 결국 놀이터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그런데, 스팀잇도 저출산 문제가 발생했는지, 친구들이 다 학원으로 가버렸는지, 놀이터에 친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모처럼 마음먹고 들렀는데 못내 아쉽다.
물론 여전히 kr의 최신글을 보면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내 취향을 저격할만한 글들을 발견하기는 무척 어려워졌다. 이는 흔히 말하는 스팀잇의 UI 탓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 가입하고 글을 둘러보던 때와 비교해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스팀잇은 "생각의 가치"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나도 그 "생각"을 무척 좋아하고, "당신의 생각과 글은 소중합니다"라는 문구에 낚여 가입도 했다. 하지만, 요새는 스팀잇이 "생각"이라기보단 "사실"을 알리는 글들로 가득 차 감을 느낀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고, 어떤 전자 기기를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사실이 주류가 되고 있다. 아니면 단편적인 지식글 정도가 올라온다. 보통 이들에도 평가가 들어가 있으므로 "생각"이라 볼 여지도 있지만, 책의 줄거리만 잔뜩 써놓고 마지막에 "참 재미있었다"로 끝나는 글을 독후감이라 표현하기 어렵듯이, 나는 그 글들을 내 관심 밖인 사실에 충실한 '정보글'로 분류한다.
당연히 사람들이 무엇을 포스팅하든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같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잘못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정보이기도 하고, 원래부터 스팀잇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었던 글은 코인 관련 정보글이었다. 다만, 내가 좋아하던 작가들의 활동이 없어지고, 내가 보고싶은 글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안타까운 것이다. 과학에 대한 단편 지식도 좋고, 경제학에 대한 토막글도 좋지만, 나는 그 작가들의 뇌를 열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 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내가 재수할 때 정말 많이 들었던 곡, 로비 윌리엄스의 Better Man을 다시 들으며 오늘을 갈무리해 보자.
● 양자역학, 경제학, 그리고 진화론 (2)
● 교양을 위한 양자역학 (1)
● 교양을 위한 양자역학 (2)
● 여러분이 가장 먼저 배운 제2언어는 무엇입니까?
● 미래에는 음성 언어가 사라질까? (1)
● 미래에는 음성 언어가 사라질까? (2)
● 미치오 카쿠가 말하는 양자 컴퓨터
● 카쿠와 마윈이 말하는 미래
● 종 예외주의 (1) : 들어가며
● 종 예외주의 (2) : 종의 분화
● 종 예외주의 (3) : 이기적인 종
● 종 예외주의 (4-1) : 이타적인 종 ; 정의란 무엇인가
● 종 예외주의 (4-2) : 이타적인 종 ; 도덕적 동물
● 종 예외주의 (5-1)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선과 악의 공존
●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上
●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中
●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下
● 종 예외주의 (5-3)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동전의 양면
● 종 예외주의 (6) : 마치며
●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 : 마음 챙김 명상의 철학과 신경 과학
● 양자 역학이 의식의 본질을 밝혀낼 수 있는 이유
● 신경 가소성 : 내가 나를 보는 방식
● 영웅의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