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에 가입한 건 지난 해 10월 쯤 이었던 것 같다.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지금도 큰 메커니즘 정도만 이해하는 정도다.) 새 시대의 매력있는 플랫폼으로 보였고, 나도 이제 무언가를 진지하게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에 브런치(brunch.co.kr)를 기웃거리고 있었던 차라 얼른 포스팅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결국 첫 글을 가입 후 반년이 훨씬 지난 2018년 5월에야 쓴다.
또, 그땐 블로그를 내가 공부한 것들을 기록할 기술 블로그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오늘 내가 쓸 글은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이다.
오늘을 포함해 약 3일동안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괴롭다", "슬프다", "힘들다" 등의 우울한 감정은 밖으로 표현하고싶지 않고, 읽는 이들도 반가워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쓰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어릴때 부터 난 어떤 상황에서도 무언가 꽉 찬 적이 없다. 아무리 술술 풀려가던 것처럼 보이던 일들도 끝엔 아쉬움이 조금씩 남았던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시절 하루종일 친구들과 하던 밴드 생각만 하고 살기를 몇개월 해 겨우 열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 공연날 목이 쉬어 공연을 망쳤고, 꿈꿔왔던 초기 스타트업 개발자 생활의 결말도 아쉬움이 많았다. 외에도 내가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해준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이 있다.
반대로 정말 안좋을 뻔한 상황에서도 아주 큰 낙오에 빠진 적은 없다.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엄마의 무한한 사랑으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서는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 쓰리라 다짐하고 산 적이 몇번(현재도 그러고 있다.) 있는데, 회사를 다니며 모아둔 돈이 조금 남아있는 지금을 제외하고는 매번 정말 생활비가 떨어져 굶어야 하거나 실패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해야(이건 죽기보다 싫다.) 할 상황 직전 마다 돈을 벌 기회가 왔다.
오랜만에 이런 상황이 다시 왔다. 정확히 말하면 몇년을 이 "꽉 채울 수 없는" 상황에서 살고있는데 모른척하다 3일 전에 현실로 다가왔나보다. 아무도 내가 누군지 모르는 이 공간에 다 풀어놓고 싶어 왔는데 막상 쓰려니 차마 그러진 못하겠다. 난 내 얘기를 터놓고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글을 쓰고있는 방금 느낀건데 난 블로그 포스트 하나마저 솔직한 내 생각으로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난 왜 깔끔히 마무리하지 못할까. 왜 항상 작은 번짐 하나로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림을 버려야할 때 쯤 기막힌 색이 칠해져 미련을 갖게 할까. 아마도 태어난 때 부터 무언가가 꼬였던 것 같다. 천성, 능력, 그리고 약점 모두 내 환경과 맞지 않는다. 시작부터 맞지않는 톱니가 끼었기 때문에 기계가 부드럽게 돌아갈 리 없다.
1년 조금 넘는 기간동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항상 스스로 불행하다 생각했는데 지난 1년 3개월은 내가 내 입으로 말하고 다녔을만큼 정말 행복했다. 여러 요인들로 인해 행복이 커지고 커져 최근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역시 이러면 안됐나보다. 영화의 결말이 슬프다는 걸 알면서 또 보는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난 아니다. 잃을 것들을 생각하면 차라리 죽고싶다.
운명의 존재에 대해 많이 고민해왔지만, 그래도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간다는 쪽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운명론이 내게 말한다. 자기가 이겼다고. 내가 졌다. 이번엔 내가 선택을 애매하게 하지도 않았다. 확실하고 주도적인 방향으로 걸어왔는데 멀리서 보니 걸어온 길이 "운명"이란 글씨를 크게 쓰고 있었다. 부처의 손바닥 위 손오공의 기분을 정확히 알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얼마나 열심히 살든 결과가 정해져 있다면 난 살아야 할까? 이 질문이 지금의 내 결론의 시발점이다.
질문을 조금 바꿔 "어떻게하든 결과는 똑같은 인생에서 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물어봤다. 답은 너무 당연하게 나왔다. 모든 인류가 언젠가 죽을 걸 알면서도 삶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보내려 노력하지 않는가. 내가 많은걸 잃을 시간이 언젠가 올 것을 알더라도 그때까지의 삶마저 세상 잃은 것 마냥 살 수만은 없는 것이다. 언젠가 포기해야 할 줄 알면서도 난 당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행복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모두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내가 2013년 영화 [어바웃 타임] 을 본 이후로 인생의 진리라고 믿어온 바로 그 생각이다. 불교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근 몇년 간 느낀 최악의 괴로움은 알고보니 내 신념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여기서 하나 더 올라가서 불완전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과연 나만 이리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일까. 답은 알 수 없다. 중요한건 이마저도 마음먹기에 따라 내 행복의 요인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항상 끝으로 채우지 못했기에 아쉬움도 많았지만 그로인해 많은 일에 내가 좋아하는 '논란의 여지'를 남길 수 있었고, 나락으로 떨어질 땐 안전벨트의 역할도 해줬다. 그리고 사실 올해 양자역학 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 이 불완전이 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이 생각이 정말 재밌었는데, 양자역학과 불완전한 세상은 나중에 한번 따로 글을 써 정리 해봐야겠다.) 이를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드디어 운명과 그 반대의 사이 어디 중간점을 찾은 것 같다. 운명이 삶을 어디로 이끌어가든, 그것이 빠르든 느리든, 곡선이든 직선이든 그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과 슬퍼하는 것은 내 선택이다. 운명이 이끄는 대로 가는 내 불완전한 삶을 최대한 행복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생에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고, 앞으로 자주 까먹겠지만 정신차리고 다시 생각해내면 뭐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글을 쓰는 것이 꽤나 큰 도움이 됐다. 기분이 정말 많이 나아졌다. 나도 앞으로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스스로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 제목에 (1) 이 있는 이유는 바로 다음 글이 (2)이어서 가 아니라, 난 삶을 살아오며 생각이 아주 급변해왔기 때문에 언제든 이에대한 생각이 바뀌게 되면 (2)를 쓸 생각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이 며칠 안 갈 지도 모른다.ㅋ
+) 영화 [500일의 써머] 에서 처음엔 톰 만이 운명을 믿었고, 나중엔 써머만 운명을 믿게 된다. 누가 운명을 믿고 안믿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명을 믿고 그를 소중히 하고 즐길 줄 알았던 인물만이 행복을 누린다. 처음에 톰은 운명을 믿고 써머를 온전히 사랑하며 행복했고, 써머는 운명을 믿지 않았고 또 현실에 불안해했다. 후반엔 톰이 운명을 믿지 않으며 삶을 볼품없이 봤고, 써머는 운명을 믿고 행복을 선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