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포츠에서 압도적인 기량과 퍼포먼쓰를 뽐내는 프로 선수를
우리는 외계인이라고 칭한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 황제라 불리우는 선수는 많다.
축구의 펠레,농구의 마이클 조던,포뮬러 원의 미카엘 슈마허,골프의 타이거 우즈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 등 황제는 의외로 많은데 외계인은 그리 많지 않다.
야구는 흔히 투수의 놀음이라고 하는데 야구의 본고장 미국 MLB에서 원조
외계인 칭호를 받은 선수가 페드로 마르티네스다. 20세기 후반에서21세기 초반
MLB를 호령한 놀란 라이언,랜디 존슨,페드로 마르티네스,로저 클레멘스등
4인의 슈퍼 에이스 중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별명이다.
축구는 스트라이커의 경연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90년대 후반 제2의 축구 황제
호나우두의 출현으로 전세계는 열광했다. 아트 사커 미쉘 플라티니의 아성을 넘어선
지네딘 지단조차 빡빡머리 호나우두에 밀려 [축구=호나우도]라는 공식에
씁쓸함을 맛봐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호나우도의 화려함은 얼마 못가 신의 재능에 인간의 육체가 견디질 못했다.
호나우도가 극적으로 재기한 2002 월드컵은 3R로불리는 호나우도,히바우도,호나우지뉴가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특유의 잇몸 미소를 자랑한 호나우지뉴를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발돋움하게 만든 대회였다.
맨유와 바르셀로나의 경합속에 호나우지뉴는 극적으로 바르셀로나행 티켓을 손에 쥐게 된다.
2003-2004 데뷔 초반부는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부상과 적응등에 어려움을 겪은 딩요는
2004년 해가 바뀌면서 서서히 마법사의 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드로메다로부터
교신이 시작된 시점이 분명하다
FC 바르셀로나가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으로 바뀐후 자율 축구를 선보이고 있었는데 그
중심이 바로 딩요였고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선수가 에드가 다비즈였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출신인 에드가 다비즈의 활약속에 딩요는 공격 라인의 선봉에 서서 FC바르셀로나를 서서히
강팀으로 변모시켜갔다.
화려한 데뷔골에 이은 등으로 주는 패쓰, 등 트래핑, 플립플랩, 순간 가속, 노룩 패쓰등
그의 발끝에서 시작된 축구는 그 이전에도 볼 수 없었고 그 이후에도 볼 수 없는 환상속에나
가능할 것 같은 꿈의 축구를 누캄프에서 펼쳐 보였다. 눈이 호강하는 경기가 아닌가?
딩요의 맹활약속에 바르셀로나는 챔스 티켓을 손에 거머쥐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게 된다.
혹자는 딩요를 전성기가 짧았던 선수로 기억하는데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딩요는 최전성기가 짧았을 뿐 전성기 자체는 짧지 않았다. 최전성기의 임팩트가 워낙
컸기에 2004-2006년 3년을 비교해 봤을 때 다른 기간은 부진한 것으로 오해되기 쉽상이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밤잠을 설쳐가며 딩요의 전 경기를 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의 축구가
다른 선수와는 확연히 달랐고 그의 발끝에서 펼쳐지는 마법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은 욕구가
충만했기 때문에 새벽 경기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유튜브 축구 동영상에서 딩요 스페셜을 찾아보면 3년간의 퍼포먼쓰가 주류를 이룬다.
현재 메시나 호날두,네이마르가 압도적인 경기 모습을 보여 주지만 딩요의 최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다. 경기전 기대와 흥분으로 그의 경기를 기다리는 팬심은 외계의 신호에 밝은 미소를
드러내며 경기 그 자체를 즐기는 딩요와 한 몸으로 경기장에 서 있음을 느끼게 한다.
2006년은 챔스의 성공과 독일 월드컵의 실패를 동시에 맛 본 한해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2006년 이후 딩요는 최정상에서 서서히 내려온다.
AC밀란 이적이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승선하기 위해 절치 부심했지만 안정적인 수비
축구를 지향하는 둥가 감독의 눈은 끝까지 마법사 딩요를 외면했다.
밀란에서 브라질로 그리고 멕시코 리그까지 딩요는 마지막 축구 인생을 그가 자란 남미에서
보내게 되었다. 화려한 플레이는 여전했지만 뚱뚱해진 육체는 마법마저 둔탁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남미 최우수 선수상을 받았으니 그의 재능의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다.
딩요는 인도 프로 풋볼 선수를 거친 후 작년말 드디어 선수 생활에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고 , 마법은 없어지지 않고 기억될 뿐이다"
동시간대에 축구판에는 딩요,야구판에는 페드로가 외계의 스포츠를 선보였다.
딩요와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원조 외계 선수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