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contest]<국부론> (부제: 시대는 다시 애덤 스미스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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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oldstone@oldstone 님의 글을 우연히 보고 [kr-contest]에 참가하고자 오랜만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갑자기 새로운 일들이 쏟아져서 스티밋에 눈팅만 겨우 하고 있었는데, 좋은 기회로 다시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일이 정리 되는 대로 정기적인 포스팅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국부론]을 처음 만난 건 학부시절 경제학 개론을 수강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담당교수님은 맨큐의 경제학과 함께 국부론을 조별로 강독할 것을 요구했다. 말로만 듣던 국부론을 읽게 된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흥미롭겠다’ 생각했으나, 막상 팀플을 진행해보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책의 분량이 내 예상을 훨씬 초월했다. 평범한 두께의 책이라 생각했는데 사전두께의 책 두 권이 상, 하편으로 내 눈 앞에 놓여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경제학에서 흔히 나오는 수학적 측면은 없었지만 엄청난 역사적 예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학기 중에는 시간상 국부론을 도저히 정독하지 못하고 팀원들과 구간을 나누어 정리한 것으로 기억한다. 완독한 시기는 사실상 해당학기를 훨씬 넘긴 한참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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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책이지만, 인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명저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경제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사람은 애덤 스미스이고, 그런 그가 ‘시간을 때우려 만든 한 권의 책’이 바로 국부론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늘날 경제학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개념들이 투박하면서도 매우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여기서는 중요한 개념 몇 가지만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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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그 유명한 분업의 원리다. 국부론을 처음 펴면 맨 첫 장에 나오는 개념이기도 하다. 분업의 효과를 처음으로 완벽하게 설명해낸 애덤 스미스는 이후 세계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데 큰 공헌을 한다. 일명 포디즘으로 일컬어지는 컨베이어벨트 생산방식은 이 분업의 원리를 응용하여 생산력을 극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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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경제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에 포디즘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대량생산체제에서 나오는 단일 품종의 생산성에 비해 소비자의 욕구는 단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소비야말로 모든 생산활동의 유일한 목표이자 목적이며,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데 필요한 한에서만 고려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헌데 해당 대목의 뒷부분에는 ‘중상주의’라는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내용이 나온다. 중상주의는 무엇일까?

중상주의는 애덤 스미스의 시대에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던 경제적 사상이었다. 사상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신대륙의 발견으로 금은이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중상주의자들은 이 금은을 국부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자국중심의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그들에 따르면 금은이 곧 국부이므로, 금은의 유출은 국력쇠퇴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국가가 강력하게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통제해서 금은의 양을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모든 유럽의 국가가 이렇게 되어 버리면 사실상 자국보다 우수한 타국의 물품을 구매해줄 국가는 없어진다. 왜냐하면 아무리 타국의 제품이 우수해도 그 제품을 사버리면 자국의 국부가 타국으로 넘어가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상당한 비효율성을 초래했고, 애덤 스미스 대에 이르면 그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국가는 금은의 유출을 막기 위해 자국과 일방적 거래를 가능케 하는 식민지 국가를 건설하였으며, 오직 국부라는 이름 아래 기득상인이 하위계층을 수탈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허용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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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의 전반에 걸쳐 중상주의를 비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온 이론이 바로 애덤 스미스하면 생각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개인들의 이익활동에 따른 국부창출이 오히려 시장원리에 따라 공익을 증진시킨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 애덤 스미스를 보수경제의 아버지라 보는 것이 얼마나 잘못 됐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그의 시대에 순응하기보다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시대의 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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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애덤 스미스는 노동가치설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오직 금은의 축적만이 국력향상이라 믿었던 중상주의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한 이론이었다. 노동의 능률에 의한 생산과 소비의 증대가 금은의 축적보다 훨씬 낫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발전 속도를 서술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국부론이 출판된 년도가 1776년인데 미국의 독립혁명은 그 직전인 1775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이 영국을 이길 것이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동가치설은 이후 리카도에 의해 계승되고 마르크스가 그 정점을 찍는다. 그렇게 시대는 새로운 사상을 갈구하며 격동기를 맞이했다. 학계에서는 이 격동기의 끝을 보통 2차 대전 종전 직후로 보고 있다. 혼란에 종지부가 찍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그로부터 약 70년 후의 세상에 직면해 있다. 세상은 이 70년의 시간동안 비교적 고요함을 유지했으나 미시적으로 보면 큰 사건은 얼마든지 있었다. 경제사적인 측면만 하더라도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한 케인지언이 70년대에 후퇴하고 신자유주의자와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통화주의자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들은 물가가 오르는데 경제가 불황인 ‘스태그플레이션’을 국가의 개입으로 풀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는 통화정책 등 최소 역할만 수행하면서 나머지는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맡길 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이 주장은 일견 타당한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상이 학자들의 이론대로 돌아가는 이상사회도 아닐뿐더러, 그 이론을 사익에 추구하는 데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이고, 기형적으로 커져가는 부동산과 파생상품 시장이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 마음속에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다는 전제하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길 원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일종의 양심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의 역사를 볼 때 모든 사람이 전부 다 양심이 있다고 볼 수는 없으며, 양심이 있던 사람도 어느 순간에는 그 속성을 일시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깨달음의 반작용으로 나온 것이 공산주의 혁명이었고, 이 실험은 대실패로 끝났다. 비단 경제적인 실패뿐만 아니라 애초의 최대 목표였던 공평성, 도덕성조차도 자본주의에 훨씬 못 미친 채로 말이다.

이제 시대는 새로운 난제에 직면했다.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니 ‘공명정대한 관찰자’기능을 잃어버린 소수의 집단들이 권력을 남용하고, 국가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니 관료가 부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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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블록체인은 [국부론]이 이룩하고자 했던 이상향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모든 장부가 투명하게 기록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정착된다면 우리 모두가 공명정대한 관찰자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만에 하나 그것을 지키지 않는 개인이 등장하더라도 데이터에 기록된 조작할 수 없는 증거 아래 공정한 법의 심판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블록체인의 이러한 매력에 매료되어 새로운 자유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시대가 다시 애덤 스미스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