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들어와 내근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A기자 바꿔주세요."
"A기자는 이 부서가 아닌데요, 무슨 일이신지요."
"그 부서 아니면 전화 돌리세요."
내가 뭐라도 잘못했다는 듯이 독이 오를대로 오른 목소리에 별다른 말 없이 전화를 돌린다. 아니, 사실 좀 짜증이 나서 A의 부서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전화는 한참을 돌고 돌아 제 갈 곳을 찾았다. 그쪽 부장은 전화를 끊고 "좀 정신나간 여자가 전화를 했다"고 불쾌해 했다. 뭘 잘못 썼다고 난리였단다. 잘못 쓴 게 아니라 기사 나갈 당시엔 그게 맞았는데 최근에 달라진 거다. 하지만 구구절절 설명하면 또 앙칼진 목소리를 들을 테니, 부장은 능숙하게 예예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신문사에 전화를 거는 사연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제보를 가장한 민원' '제보를 가장한 신세한탄' '제보를 가장한 화풀이' '지적질' '제보' 등이다. 특히나 마이너 신문사엔 제보다운 제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특히나 요즘은 JTBC가 제보를 모두 빨아들이고 한겨레에서 남은 것 좀 먹고 MBC에도 좀 떨어지고 하면 없을 것 같다. 그나마 뭐가 남았더라도 상위 언론사에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남은 것들, 문전박대 당하거나 정중히 거절당한 것들이 흘러흘러 여기까지 오는 것 같다.
오늘의 경우는 지적질+화풀이 정도로 정리되겠다. 요즘은 영혼없이 전화를 받고 치우지만 예전엔 쌈도 많이 하고 회사로 찾아온다고 난리 치고 말도 못했다. 그만큼 나도 순수했나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려고 했으니.
마지막으로 싸웠던 건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가 나오고 한 1년쯤 뒤였던 것 같다.
"천안함을 정말 북한이 공격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닌데 왜 맞다고 쓰느냐,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전화를 받은 사람이 무슨 부서에 있는지, 기사를 썼는지 안썼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쏴대는 상대에게,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믿는 것과 기사로 쓸 수 있는 부분은 차이가 있다" "진실이라고 믿는 것만으로는 기사를 쓸 수가 없다" "유감스럽게도 그걸 취재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니다"라는 등 구구절절 얘기했던 것 같다. 말이 안 통해서 언성도 높아지고 화가 나서 전화를 집어던지듯 끊었다.
지금은 화가 나도 싸우지 못한다. 솔직히 또 어딘가에서 기레기가 돼 확대 재생산되기 싫어서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됐다. 싸움을 못하게 된 건 아마도 2014년 이후. 그 때부터 기자들은 죄가 있든 없든 죄인이 돼서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한 번 입 닫으면 영혼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맘 속에서 점점 자리를 넓혀 갔다.
대신 기자들은 서로에게 화를 자주 낸다. 특히 내가 그런 건지 내 주변만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도 누군가는 일을 미루고 그걸 거부한 상대와 전화로 싸우고 있다. 다른 쪽에선 호시절에 현장에 있었던 선배가 요즘의 젊은 기자에게 호시절 같은 노동강도를 요구해서 시끄럽다. 기사를 어떻게 써야할지에 관한 건설적인 싸움이어야 하는데, 일을 하냐 마냐 하는 싸움이다.
대충 10년 정도 이쪽 밥을 먹은 기자는 진실과 사실의 괴리감에 머리를 싸매는 어린 후배와, 후배에게 자기 일을 미루는 선배 사이 어디쯤에서 내야근을 하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