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의지식密儀知識] 장소의 절대성 : 스팀잇의 광장성

seoinseock(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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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유럽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게 커다란 광장이야. 가운데를 비워놓고 주위로 집들이 있는 광장. 그리고 교회가 중앙에 있지 않고 다른 집들과 면을 닿고 있는 광장. 이 광장에서는 공정인 대화들을 하지. 약속된 언어를 사용해서 거래를 하는 거야. 그런데 재밌게도 그 광장에 세우지 말아야 할 것은, 특정 권력에 대한 상징이야.

언어는 교환적 질서를 뜻하잖아. 즉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알아야 해. 나의 뜻과 상대방의 이해가 교환되는 거야. 그런데 거기에는 항상 오해가 생겨. 내뜻이 그대로 전달되지는 않으니깐. 그래서 언어질서 안에는 구멍을 담고 있을 수 밖에 없어. 교환의 잉여라고 하는 구멍. 교환의 질서로 잡을 수 없는 잉여말이여.

이게 사회적 언어가 교환되었던 광장에 특정 권력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우길 꺼려했던 이유야. 그 잉여는 빈곳으로 있어야 하거든. 거기에 의미를 확정지을 수 있는, 이런 뜻으로만 언어를 사용해라 하는 권력이 생기면 안된다는 걸 직감한 거지. 빈 곳을 수용하는 언어에 따라 문화가 이뤄지도록 한 거야.

(참고 : [스티잇의 무의식] 공공재 게임으로 본 문화 형성의 중요성)

만약 그 광장에 어떤 언어의 의미를 고정하는 상징을 세우면, 그건 강박이 되는 거지. 실재의 의미는 확정지을 수 없는 데 그걸 확정지으려는 권력의 강박. 우리도 그 시대를 지나왔잖아. 예컨대 4.3은 의미없다라고 규정짓는 강박적 권력 시대를 지나왔잖아. 권력은 광장의 생명을 특정의미로 멈추려고 해. 그게 권력의 실체적 속성이지. 흐르지 않는 실체.

그런데 광장에 빈곳은 그냥 물리적 빈곳이 아니야. 즉 공간이 아니라 장소인셈이야. 의미없는 공간이 아니라 의미로 가득찬 장소. 그게 가능한 이유가 교회 때문이야. 교회는 초월적 세계와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매듭이야. 초월의 이데아 세계가 현실 세계로 진입하거나 현실세계가 초월적 세계로 진입하는 매개인 것이지. 그래서 교회는 다른 집들과 벽을 같이 써야 해. 잇닿아 있어야 해. 초월은 현실과 잇다아 있어야 하는 것처럼. 현실은 초월과 잇닿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간 존재 자체가 이렇듯 모순적 존재이거든. 그리고 경제가 인간이 만든, 인간의 존재를 반영한 질서라면 현실과 초월, 현실과 가상은 잇닿아 있을 수 밖에 없지. 암호화폐의 출현 비밀이라고나 할까.^^

“나는 병적인 감수성의 상태에 처해있었다. 나의 눈에는 건물과 분수대의 대리석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두가 꿈틀거리며 다시 소생하는 것처럼 비춰졌다” - 게오르크 키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