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우루크의 젊은이들을 이유 없이 괴롭힙니다.
길가메시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지 못하게 하며
길가메시는 여인이 신랑에게 가지 못하게 합니다.
전사의 딸이자 젊은이의 신부인 그녀들을.
길가메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랑, 우정 등 인간적인 감정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야. 도시의 벽을 쌓고 운영하는데 있어 오직 효율만 중요했거든. 그래, 사랑은 필요했을 거야. 그러나 그 사랑도 재생산을 위한 사랑이지. 근로자를 재생산해 내는 사랑. 그 사랑의 경제적 효율성. 로맨한 감정을 팔고 그 감정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고 그 아내를 길가메시가 통제하는 그 재생산으로서 사랑. 내밀한 욕망에 대한 감시와 통제, 길들임이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는데 유효한 도구란 건은, 아마 예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을 거야. 감정자본주의적인 측면에서 로맨스에 대해 허락을 해 주되 동시에 죄책감도 심어주는게 좋은 거지.
인간적인 여러 감정은 경제에서 잉여에 불과해. 그런데 그 중에서 특히 우정은 비경제적 감정이지. 팀워크가 아니라 우정을 말하는 거야. 사교적이고 비즈니스적인 만남은 권장하지만 우정은 탈주의 선이기 때문이야. 우정에 빠진 사람은 근로자를 교육시키는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있고, 함께 연대해서 갑의 말을 안 들을 수도 있는 위험한 감정이거든. 그래서 우정에 대해 감시를 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게 해. 기껏 가능한 것은 공감에 불과하지. 안전한 공감.
우정은 모험을 낳고, 파괴를 낳거든. 폭력을 낳기도 하고. 한 사람이 말을 안 들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친구까지 같이 말을 안 들을 때는 곤란하거든. 그래서 우정은 폭력적이야. 이미 가지고 있는 표상을 찢기 때문이야. 얌전하게 수평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위로 솟구치는 감정이지. 위험한 감정이지 절대 갖지마. 중독되지도 말고.
명리학에서 겁재라는 게 있어. 나랑 경쟁하는 에너지란 것인데, 그 경쟁을 하기 때문에 재를 만들어 내기도 해. 더 큰 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쟁과 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로맨스와 팀워크 등 안전하고 허용된 감정에 머물러 있는 게 좋아. 그렇게 해야 귀찮게 더 큰 재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깐.
그러나 그렇게 되면, 외로워지겠지.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없어지겠지. 계산에 의한 비즈니스적 관계만 남게 되겠지. 그래도 인간로봇으로서 괜찮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