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에 걸린 남자가 병상에 실린 채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 창가에는 또 다른 남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다. 두사람은 곧 친구가 되었다. 창가의 친구는 거동이 어려운 새 친구를 위해 바깥 풍경에 대해 몇 시간이고 생생하게 들려주곤 했다. 병원 건너편 공원에 서 있는 아르드리나무에 대해 들려줄 때는 잎들이 바람결에 춤추는 모습까지 세세히 묘사해 냈다. 병원 건물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손짓이며 얼굴 표정까지 그대로 따라 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거동이 어려운 친구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창가의 친구가 들려주는 경이로운 풍경을 직접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답답한 마음만 커져갔다. 자기를 즐겁게 해준답시고 친구가 조잘댈수록 신경은 더욱 예민해졌다. 그러다 급기야 창가의 친구를 극도롤 미워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창가의 친구가 갑자기 세찬 기침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동이 어려운 친구는 단추를 눌러 간호사를 부르지 않았다. 깊이 잠든 척 움쩍도 하지 않고 기침이 멈출때까지 숨죽여 듣고만 있었다. 얼마 후 병실이 잠잠해졌다. 다음날 아침, 병실지기 친구를 위해 날마다 창밖의 풍경을 들려주던 친구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는 병실에 들어올 때처럼 바퀴달린 병상에 실려 홀연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남자는 간호사에게 창가로 병상을 옮겨달라고 했다. 그런데 창밖을 내다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창밖의 풍경은 전혀 상상 밖이었다. 그곳에는 아름드리나무도,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낡아빠진 벽돌이 허물어질듯 서 있을 뿐이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주려도 있지도 않은 풍경을 애써 그려가며 들려주었구나, 그 은혜로운 몸짓을 나는 그토록 미워하고 있었다니....’
이 이야기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의 시야에 대해 생각해 보게된다. 우리는 아무리 곤경에 처해 있더라도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향해 시야를 넓힐수 있다. 막다를 골목에 몰리더라도 그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이 어딘가에는 있기 마련이다.
지금 안고있는 문제가 대단하게 느껴진다면, 머릿속의 고민거리가 도저히 해결할수 없을 정도로 커보인다면, 자신의 시야를 생각해볼 일이다. 끝없는 우주에 비하면 우리 눈앞의 풍경은 얼마나 작고 사소한 것인가. 그 풍경 너머에는 얼마나 광활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가. 당신은 스스로 높은 벽을 쌓아놓고 막다른 골목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 안에서만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있는것은 아닌가.
끝없는 세계의 조그만 땅에서 우리는 아주 잠시동안 머물다 떠나가는 존재다. 영원한 이 세계의 시간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그저 ‘찰나’일 뿐이다. 그러니 눈앞에 풍경에 얾매이지 말고 더 멀리 시선을 돌려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 이 좁은 공간에서도 영원한 행복을 누리려면 말이다. - 출처:데일리 위즈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