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오책
일본을 공부하자 - <일본인 이야기 1- 전쟁과 바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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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에게 ‘역사’란 거의 80%가 ‘국사’(國史)일 것이다. 공무원 시험 과목부터 대입 과정까지 ‘필수’로 지정돼 있고 대중적 역사 콘텐츠의 대부분이 한국사에서 비롯되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나머지 15%는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등에서 가지를 뻗거나 당 태종, 청 태종 등 한국사와 깊이 연관된 정도의 중국사, 나머지 5%는 20세기 서양 현대사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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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는 역사교육의 ‘영양 불균형’이라고 생각한다. 밥이 주식(主食)이라고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데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끼니마다 멸치대가리 하나와 무말랭이 한 조각에 밥만 두 사발 꾸역꾸역 먹고 있는 형국이라는 얘기다. 그러다가는 역사적 각기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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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각기병은 비타민 B1부족으로 걸리는 병이다. 쌀을 도정하는 과정에서 비타민 B1가 떨어져 나가는데 이 흰밥으로만 끼니를 때우는데 다른 반찬이나 요리로 비타민 B1을 섭취하지 못하면 걸리게 된다. 즉 겉으로 보면 쌀밥 잘 먹고 형편 괜찮은 것 같은데 속으로 곪아서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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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각기병 증상 또한 비슷할 것 같다. “역사” 얘기만 나오면 피가 끓는 사람이 수십만 수백만은 족히 되고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임자 모를 격언 (신채호는 이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에 결연히 주먹을 부르쥐는 이들이 지천인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한국사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뭐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어하는 마음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면 배는 부르지만 다리는 개미 다리가 되어 픽 고꾸라지는 ‘역사적 각기병’ 환자가 되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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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역사적 각기병 위험군에 속한 한국 사람으로서 역사라는 길 위를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일어서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기 싫은 마음으로 조금은 강제로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본에 대한 책이 보였다. 김시덕 저 <일본인 이야기 1- 전쟁과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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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는 열광적인 팬으로서 신간이 나올 때마다 환호를 올리며 구입해 왔지만 <일본인 이야기>의 제목은 낯설었다. 당연하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고 요리도 시켜 본 놈이 시킨다. 중국사, 중국 근현대사는 그래도 이리저리 주워듣고 뜯어먹은 경험이 있지만 일본의 역사는 애피타이저에도 근접한 기억이 어슴푸레하지 않은가. 그래도 용기를 내어 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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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부터 뜨악했다. 책 제목은 <일본인 이야기>인데 그 1장의 제목은 “전투 없이 거래 없다”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저자는 이 캐치프레이즈가 “세계를 움직이는 당당함 혹은 뻔뻔함이 유럽 문명권이 세계를 지배한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확신”하고 <일본인 이야기>의 첫장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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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이유를 든다면 “도쿠가와 막부는 17세기 초 유럽 국가들 가운데 네덜란드만을 유일한 무역 상대국으로 선택했고..... 그것은 정치적 안정과 자신의 권력 체제 유지를 위해 네덜란드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본문 중)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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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책은 바야흐로 대항해시대가 열린 후 전 세계 대양을 가로지르며 지구 반대편에 나타났던 서양 사람들과 일본인들의 만남과 다툼, 수용과 거부, 그리고 이른바 당시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일본, 그나마 한국 사람들이 소설 대망 등을 통해 가장 눈에 익으며,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참화가 벌어졌던 시기를 전후한 일본인들의 면면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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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귀에 익숙한 세 ‘천하인’(天下人),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서양 세력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훑으면 흥미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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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 자손들은 천주교를 받아들였던 오다, 필리핀 총독에게 왜 항복하러 오지 않느냐고 뻥을 쳤고, 조선과 중국 침공을 위해 서양 선박 도입을 논의하기도 했지만 가톨릭 금지령과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던 도요토미, 활발하게 전개되던 서양과의 교류를 몇 개의 통로를 제외하고는 전면 중단시키고 “무사집단의 권력 독점을 위해 일본의 국가 성장을 멈추는” (물론 200년의 평화를 일군 측면도 있으나) 결단을 내린 도쿠가와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세 명의 성격을 다룬 우화, ‘울지 않는 새를 어떻게 울게 할 것인가’의 실사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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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슴과 머리를 쳤던 이유는 비슷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 조상들은 왜 이렇게 몰랐던가.” 포르투갈과 명나라가 전투를 벌이고 일본이 서양식 총을 받아들이고 상당히 많은 다이묘들이 천주교인이 됐던 그 시기에 정말 우리 조상들은 불운하게도 서양과 제대로 접촉하지 못했다. 지정학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당시 조선은 그야말로 ‘은자의 왕국’에 걸맞는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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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조선에도 왔었던 다테 마사무네 같은 사람이 일개 다이묘로서 서양에 사절단을 파견하고, 일본인이 태국의 왕위 계승 전쟁에 관여하며, 스페인과 네덜란드, 포르투갈과 영국이 엎치락뒤치락 조선에서 한 발짝 먼 바다인 일본 근해와 동지나해에서 각축을 벌이고, 대만에서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혼혈인 정성공에 의해 쫓겨나고, 수만 명의 일본 천주교인들이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서서 순교하던 그 시절, 그야말로 숨가쁘게 돌아가던 그 즈음에, 우리는...... 표착한 네덜란드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자극을 받지 못했다는 걸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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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같은 시기 조선에는 이러한 위기와 행운 (서양 세력의 대두의 부정적, 긍정적 제 효과)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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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람들이 임진왜란의 경과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 결과를 예상하고 계산기를 (아니 그때는 주판이었으려나) 두드리고 있었으며 정묘호란 때 조선이 후금에 항복했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 침공까지 (가능성은 적었으나) 고려했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따지고 보면 임진왜란은 조선을 무대로 한 동북아시아판 세계대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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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즉 사이암의 왕 나레수언이 일본의 배후를 치겠다고 제안했고 (가능성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제안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흑인 병사들이 명나라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풍경이 기록돼 있으며, 조선이 그렇게 골탕먹었던 조총은 포르투갈에서 전래됐고, 임진왜란의 선봉으로 부산진과 동래성을 함락시킨 고니시 유키나가가 독실한 천주교인으로서 스페인 신부를 조선에 불러 병사들을 보살피게 했다는 사실을 두고 보면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국한하기 어렵지 않을까. 임진왜란 이후 끌려가 가톨릭을 받아들이고 가톨릭 순교자로 남은 조선인들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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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강렬한 외부의 충격을 받고도 조선은 왕조 교체나 지배층 몰락은 커녕, 지배구조가 더 공고해지고 오히려 더 숨막히는 사회가 돼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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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중국인과 일본인 무시하는 건 한국 사람 밖에 없다고, 한국 사람들은 일본 자체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섬나라 뭐라고 무시하기는 잘하고 왕년에 도자기도 못 만들어서 조선에서 배워갔다는 근거 박약 우월감은 쩔지만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 그들의 변화에 대해서, 그들의 성취에 대해서 똑바로 쳐다볼 능력과 시야는 아쉬울 때가 많다. 저자가 이렇게 일갈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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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과 매우 다른 역사적 경험을 지녔습니다. 그 경험의 차이가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부분이 16~17세기 남중국해 연안에서 전개된 일본인의 활동, 그로부터 촉발된 유럽과의 접촉입니다. 이런 차이를 못본 척하고 한자문화권이니 유교문화권이니 왕인 박사니 하며 한국과 비슷한 것만 찾아서는 결코 일본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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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숨가쁜 역사 속에서 반짝이다가 사그라들었다. 그 대충만 다시 떠올려도 그들의 삶에 호기심의 시위가 당겨지고 역사 속 사람들의 체취가 코를 스미게 된다. 일본 최고의 한의학자로서 (한국으로 따지면 허준급?) 가톨릭을 받아들였던 마나세 도산, 1582년 가톨릭 다이묘들의 후원을 받아 로마로 향하는 ‘소년 사절단’과 그 후 순교로 끝나는 그들의 여정, 포로가 돼 일본에 끌려가 천주교인이 되고 배교를 강요받지만 끝내 거부한 채 일본 각지를 떠돌며 일생을 마쳤다는 조선인 쥬리아, 선교하겠다고 일본에 와서는 ‘전향’하여 ‘사와다 주안’이라는 일본인이 돼 가톨릭 탄압에 앞장선 크리스토방 페레이라 신부...... 하나 하나가 영화 소재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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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뒤 우리 시대도 누군가 돌아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격랑이 일어나던 시기 예송 논쟁을 벌이던 우리 조상들을 우리가 돌아보듯이. 홀연 걱정이 된다. “21세기 초, 저 중요한 격동기에 대한민국 사람들은 ‘조국대전’에 휩싸여 있었다.”고 행여 혀를 차게 되지 않을까. 이 막대한 에너지 낭비의 책임이 어디에 있든, 결국 그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나눠질 수 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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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을 기다린다. 일본을 공부하기 위해서 '각기병'에 걸리지 않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