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펙 영면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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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11일 그레고리 펙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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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에서 공주님과 짧은 로맨스를 즐기지만 쓸쓸히 돌아서야 했던 미국 기자, ’백경‘에서 끝간데 모를 복수심을 불태우며 흰고래 모비딕을 쫓던 광기어린 에이허브, ’앵무새 죽이기'에서 누명을 쓴 흑인 소년을 구하기 위해 열변을 토하던 정의의 변호사, 그 외에 수십 편의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스크린을 누볐던 헐리우드의 전설, 아울러 우리 아버지가 인정한 최고의 배우 그레고리 펙이 2003년 6월 11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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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겠지만 헐리우드 영화 가운데 한국 전쟁을 다룬 영화는 드물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명화를 꼽는다면 더욱 귀하다.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이라는 별칭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2차 대전 때 퍼부은 폭탄보다 더 많은 폭탄을 쏟아부은 전쟁 치고는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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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레고리 펙은 한국 전쟁 관련 영화를 몇 차례나 찍었다. 234고지 전투를 다룬 포크 힐에서 그는 불굴의 장교 역을 맡았고, 맥아더를 연기한 ‘맥아더’ 도 한국과 무관한 영화는 아니었으니 이만하면 그 나이 또래의 헐리우드 스타 가운데에선 꽤나 각별한(?) 인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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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의대생이었던 그는 연극반에서 연극을 접한 후 의사가 아닌 배우에 자신의 꿈을 실었다. 한 번 이혼은 했지만 두 번째 아내와 평생을 해로하며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이 반듯한 일생을 살았던 그는 동료 배우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최선을 끌어내는 배우로도 유명했다. 오드리 헵번이라는 요정을 세계에 선사했던 로마의 휴일에서 신출내기 배우라는 이유로 홍보 담당자가 오드리 헵번의 이름을 뒤에 올리자 “이 영화로 그녀는 아카데미상을 탈 거라구! 나하고 동등한 주연으로 이름을 올려요,”라고 일갈했다는 그의 일화는 그의 성정을 짐작케 해 준다.

월남전이 한창일 무렵, 그는 아들을 군에 입대시킨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도 반전운동에 앞장선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나라에 대한 도리는 다해야지. 하지만 나라가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도 국민의 의무야.” 또 같은 배우 출신인 레이건이 백악관에 앉아서 스타워즈다 무엇이다 군비 경쟁에 열을 올릴 때 일흔의 노구를 이끌고 소련을 방문하여 핵 없는 세상을 외치며 전략 핵무기 감축을 주장하던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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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앵무새 죽이기>에서 연기했던 시골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AFI (미국 영화 연구소)가 선정한 헐리우드 100년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됐다. 온갖 영웅들이 판을 치고 영웅 만들기가 하나의 주제인 헐리우드의 100년이 쌓은 인물군 가운데 최대의 영웅으로 정의감 넘치는 시골 변호사가 등극한 것이다. 캐릭터의 훌륭함 탓도 있겠으나 그를 완벽히 연기했고 스스로 나 자신과 가장 비슷했다고 술회하던 그레고리 펙의 후광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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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박애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단순히 내가 옳다고 믿는 행위에 참여할 뿐이다.' 펙의 말이다. 우리는 어떤 주의자고 어떤 직업이기에 앞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행위에 얼마만큼 참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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