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아래 정의가 없다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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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z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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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9.12 天無公理 - 하늘도 공정하지 않다

1996년 9월 12일 대만의 타이뻬이 공군 작전 사령부 안 화장실에서 5살난 여자 아이가 강간당하고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됐다. 피해자는 부대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딸이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으슥한 뒷골목도 아니고. 삼엄하기로 이름난 공군 작전 사령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온 대만이 발칵 뒤집혔다.
...
분단국가로 반세기를 넘게 살아온 나라라 그런가 한국과 대만은 공통점이 참 많다. 계엄령을 몇 십년 동안이나 유지해 온 나라가 대만이라면, ‘심야 통행금지’를 당연한 삶의 일부로서 폐지 운동도 거의 없이 공손히 수용해 온 나라가 한국 아닌가. 사건 후 여론과 공권력의 향배 또한 놀랄만큼 유사했다.

분노한 여론이 군부를 향했고, 타이뻬이 시장은 “한 달 안에 사건을 해결하라.”고 윽박질렀다. 공군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오버페이스를 하게 된다. 군 영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강력범죄인 이상 군 헌병대가 나서야 했으나 수사를 맡은 것은 방첩대였다. 즉 우리로 치면 기무대가 설치기 시작한 것이다.

용의선상에 오른 이들에게 거짓말 탐지기를 대 본 결과 딱 한 명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쟝궈칭(江國慶 )이라는 공군 병사였다. 방첩대는 이 결과를 신주단지처럼 부여잡고 그를 집중적으로 심문했다. 말이 심문이지 “37시간 연속 강압 조사와 전기봉 사용”을 곁들인 고문이었다. 쟝궈칭은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나 법정에서 고문의 결과라며 부인했다. 판사는 사건의 재조사를 명령했으나 수사당국은 또 다시 쟝궈칭을 지지고 볶아 또 한 번의 자백을 얻어냈고 이를 근거로 장궈칭은 사형 판결을 받는다. 1997년의 일이었다.

군인이었으니 총살이었다. 시신을 인도받은 아버지는 서명 대신 “天無公理” , 즉 하늘에도 공정한 이치가 없다고 적었다. 고문을 받아 허위 자백했노라고 울부짖던 아들을 꿈에도 지울 수 없던 아버지는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세상을 떴다. 그 한이 얼마나 깊었을까. 아버지는 수사 관계자 18명의 이름을 대문 앞에 걸어두고 ‘개새끼들’이라고 적어놓고 살았다.

장궈칭이 총살당한 뒤 3년 뒤 검찰에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사건의 범인이 쟝궈칭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쉬롱저우란 이름의 용의자는 장궈칭과 함께 군 복무를 했던 이였는데 제대 이후 두 건의 소아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중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다. 검찰은 범행 수법이 문제의 사건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지만, 이미 군대 내에서 처리가 끝난 사건을 민간 검찰이 손 대는 것은 껄끄러운 문제였던지라 (이것도 한국과 비슷하다)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런데 2010년 용의자가 출소하면서 사태는 급진전한다.

검찰의 재조사 결과 진실로 입이 벌어질만한 사태가 벌어진다. 현장에서 수집된 증거 자료 가운데 쉬롱저우의 지문이 버젓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쉬롱저우도 범행이 자신의 행동이었다는 것을 순순히 자백한다. 심지어 피해자의 몸 속에서 발견된 DNA도 쉬롱저우의 것이었다. 범인은 장궈칭이 아니었던 것이다. 장궈칭이 지은 죄라고는 심약한 나머지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지 못한 죄 밖에 없었다.

총통과 국방부장 이하 고위 관리들이 장궈칭의 모친을 찾았을 때 그 집에는 14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장궈칭의 빈소가 차려져 있었다. 아들과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자식의 영정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총통 앞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음으로써 천 마디의 말을 토해 냈다. 자식의 시신 인도 서류에 하늘조차 정의를 외면했다고 각혈같은 네 글자를 썼던 그 아버지는 저승에서나마 그 글귀를 고쳤을까. 죽어서도 두 눈을 치뜨고 있었다는 장궈칭은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핏발선 눈으로 썼던 ‘개새끼들 명단’의 인사들은 지금 어떤 심경일까. (비슷한 한국의 예로 봐서는 ‘이미 끝난 사건 들추지 말라’고 되레 화를 내고 있을 것 같지만)

그리고 하나 더, 새로운 진실에 흥분하여 들고 일어났던 대만 국민들은 과연 결백하기만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끔찍한 사건의 범인을 하시라도 잡고 그에게 돌을 던지고픈 마음에 쟝궈칭을 범인이라는 당국의 발표를 지레 수용했던 사람은 없었을까, 그 사법살인의 감시자로서보다는 방청객으로서만 자리했던 이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그리고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그 엉성함을 용인했던 것이 다름아닌 대만 국민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에게,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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