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10월 11일 파브르 곤충기 맺음
내 또래의 사람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나폴레옹이었겠지. 그 다음을 꼽자면 나는 이 사람을 꼽을 것이다. 파브르. 파스퇴르 우유가 나오기 전까지는 파브르가 더 친숙했을 테니까. “파브르 곤충기”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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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가 곤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가난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도 가난해서 어려서 쥐고 놀 장난감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자란 프랑스 남부의 자연 속에 뒹굴며 자랐고 자연스럽게 곤충과 친해졌다. 언젠가 지리산 자락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밤새 얼굴에 내려앉는 나방 때문에 환장을 하고 결국은 다 때려잡았었지만, 파브르에게는 그들이 모두 친구였던 것이다.
가난은 그의 생애 대부분을 장식했다. 그가 부모 품을 떠난 건 열 네 살 때였다. 레몬 행상과 공사장 인부 등 별의 별 일을 다 경험하면서도 그는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고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하면서도 나라에서 학비를 보태 주는 사범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그 합격 통보를 받은 주소는 다름아닌 그 공원이었다고 한다. 아비뇽 사범학교 수석 합격이었다. 하지만 사범학교에서도 그가 열정을 쏟은 것은 라틴 어나 기타 따분한 책이 아니라 산과 들로 누비며 마주하는 자연, 그 와중에도 곤충들이었다. 그래도 공부를 놓지는 않았고 4년이 정석이던 사범학교를 3년 안에 졸업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는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곤충 연구를 그치지 않았고 파스퇴르나 영국의 다윈같은 과학자, J.S. 밀 같은 사상가들과도 교류했다. 다윈과 다정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도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다윈의 진화론에 찬동을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성경 말씀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같은 어거지가 아니었다. 파브르 평전에는 그 이유가 이렇게 드러나 있다.
“지칠 줄 모르고 알을 낳는 매미의 바로 뒤에서 기생충 같은 벌이 기다리고 있다가 매미가 알만 낳으면 그때마다 자신의 깨알만 한 알을 그 매미의 알 속에 낳는 벌을 관찰하면서 파브르는 매미에게 이렇게 생친다. “너 가련한 어미 매미야, 수백 년의 경험도 너를 좀더 똑똑하게 만들지는 못했구나. 이 무서운 기생충 놈이 네 주위를 날아다니며 치명적인 침을 놓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너는 좋은 시력으로 당연히 그것을 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 벌이 너의 발뒤꿈치에 올라앉아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그저 무감각하게 내버려두고 있구나.”
파브르의 생각에는 진화론이 맞다면 수천년, 아니 수만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매미는 자신의 번식을 방해하는 벌을 퇴치하거나 최소한 피하는 방안을 고안해야 마땅했던 것이다. 하지만 매미는 여전히 무심하게 알을 낳았고 기생벌은 그 안에 알을 낳는 것을 보면서 생물이 진화한다는 설을 믿지 않게 된 것이다. 허긴 파브르가 지금 한국 사회를 본다고 해도 아마 진화론을 부정할지도 모른다. 허구헌날 선거에서 속고 또 속아도 자신에게 이익이 될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등골을 빼먹는 사람들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이 그 매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말이다. 인간도 진화를 못하는데 어찌 곤충이.....
다윈에게 파브르는 벌에 대해 이야기했다. “벌들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자기 집을 찾아 온답니다.” 그리고 그걸 실증하기 위해 파브르는 하루 종일 열나게 뛰었다가 벌을 놓아 주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한뎃잠을 자면서도 걷고 또 걸어 멀리까지 가서 벌을 풀어 주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학교를 떠난 뒤 파브르는 본격적인 곤충기들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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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만 해도 170종류를 분류했고 130여 종류의 벌을 관찰해 냈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본 바, 쇠똥구리부터 거미까지, 나방부터 노래기벌까지 거미줄처럼 복잡하면서도 벌집처럼 질서가 있는 곤충들의 사회를 꾸준히 헤집어 내어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는 열 권의 곤충기로 남는다. 완성한 것은 그의 나이 여든 넷.
그의 탐구 정신은 나이가 여든이 넘어도 식지 않았다. 그 나이에 그는 당시에 최초로 개발되기 시작하던 항공기를 연구했고 심지어 글라이더를 타고 날기도 했다. 아마도 그는 글라이더를 타면서 평생 그가 연구하던 곤충들의 날개짓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아 곤충들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무거운 곤충들이 날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프랑스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연금을 수여하고 부유한 사람들도 기금을 내어 그의 공로를 치하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것을 사양한다. 파브르는 신문에 대략 이런 글을 싣는다. 이제는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저에게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 도움들은 늙은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으니 사양하고자 합니다. 그는 모든 돈과 선물을 돌려 주었고 돌려보낼 수 없는 것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그리고 1915년 10월 11일 위대한 곤충학자 파브르는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