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해방 이후 생각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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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나라가 갈라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고비고비마다 '편'이 갈라졌고 그 편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적이 됐고 그 적대감은 점점 높아졌으며 나중에는 너 누구 편이냐를 물었고 우리 편이 아니면 죽창을 들이밀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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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같은 사람은 좌와 우는 죽일 놈이 됐고 암살 기도만 열 번 가까이 겪는다. 미국이 한때 이승만 대신 집권자로 눈여겨봤던 김규식도 힘을 쓸 수 없었다. 이미 편은 갈라져 있었고 "우리끼리 이러면 안되지 않느냐. 오해 있으면 풀자는 호소는 "그래서 너는 누구 편인데"에 휩쓸려 녹아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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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처럼 잘못 알려진 소식에 2천만이 헛춤을 추기도 했으나 그 헛춤으로 덕을 본 축도, 힘을 잃은 축도 있었다. 사실이 아닌 일에 격분했고, 상대방의 '음모'에 치를 떨었으며 "우리가 앉아서 당할 수 없다"에 팔뚝을 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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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충돌이 나서 상처입은 가슴들은 더 큰 상처를 불렀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 보라는 앙심은 피를 불렀고 피는 더 큰 피를 불렀다. 그 피는 선지처럼 굳어 장벽으로 쌓였고 상대방은 악마가 되고 괴뢰가 되고 이민족보다 싫고 병균만큼이나 절멸해야 할 혐오의 대상이 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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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공산주의자들이면서도 서로의 소속이 달랐기에 정체를 몰랐던 병사와 장교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해프닝 속에 여순사건이 터지자 남한 정부는 눈이 뒤집혀 빨갱이 사냥에 나섰고 사형장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짖는 장교들까지도 총살시키며 "누가 우리 편이냐"를 물었다. 북에서도 당연히 그랬고 그 박해를 피해 내려온 서북청년단은 남에서 그 포한을 무지막지하게 풀었다. 그리고 마침내 터진 것은 지금까지도 우리 삶을 규정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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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를 살았던 한 유생이 남긴 작자미상의 한시를 읊조린다.
참 험악한 시기였다. 작자는 미상이다. 사진은 역시 잘못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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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方哀書亂投苦 사방애서난투고
사방에서 슬픈 소식 어지러이 쏟아지니 괴로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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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帳已娑悉大高 주장이사실대고
붉은 휘장 이미 온통 휘날려 크고도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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敗北保李武燮多 패북보이무섭다
이북놈들 물리치고 이승만 지키자 굳센 불꽃도 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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憂銳罹利喝憐老 우예이리갈련노
날카로움 걱정하고 예리함을 근심하네. 이 노인 불쌍히 여기라 목메어 외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