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전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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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이란 독립국을 스포츠 무대에서 처음 접한 건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였다. 6년 전 서울 올림픽 때만 해도 위풍당당한 낫과 망치의 소련 깃발 아래 있었던 여러 나라들이 독립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독립국가연합이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출전했는데 이제 완전한 개별국가들로 아시안 게임에 출전했던 것이다. 원래 '스탄'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뿐이었는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키스스탄 등 별안간 스탄 돌림이 배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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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 축구팀은 8깅전에서 개최국 일본을 만났다. 이 경기는 한일전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기도 하는데 넉달 전 미국 월드컵 때 평생 먹을 욕을 다 먹고 수명이 반백년은 길어졌을 스트라이커 황선홍과 홍안의 대학생이었던 유상철의 합작으로 3대 2로 극적으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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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국이자 최강의 우승후보 일본을 무찔렀으니 금메달이 어른거릴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4강 상대는 이름조차 생소한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뭐 저 무슨 스탄 갓 독립한 어수선한 나라가 축구를 하면 얼마나 하겠나 싶기도 했고 한국팀 기세가 워낙 등등하여 4강전은 그냥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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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상도 비슷했다. 한국팀은 맹공을 퍼부었고 우즈베키스탄은 수세에 몰렸다. 검은 거미 레프 야신 이후 소련은 골키퍼 포지션이 유독 강한 전통이 있는데 우즈베크도 소련 출신이라 그런가 골키퍼의 활약이 특출했다. 그 골키퍼는 정신없이 움직이며 한국팀 슛을 막아 냈다. 아이고 아까비 소리가 수십번은 터져나왔지만 골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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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경기를 보면서 질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열나게 공격하다가 역습 한 방에 무너지는 양상은 한국 축구팀의 종특이자,전통일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그런 기분조차 들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은 공격도 무뎌서 하프라인을 넘는 일이 드물었다. 그저 연장가면 체력소모가 커서 결승에 불리하고 승부차기까지 가면 복불복이니 좀 꺼림칙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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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여신은 한국팀에 미소를 보내는 게 아니라 숫제 포옹을 하고 있었다. 좀 답답하긴 해도 저렇게 두드리면 문이 열리는 게 아니라 벽이라도 무너질 기세였다. 그렇게 가열찬 공격을 하던 중 우즈베키스탄 진영에서만 놀던 공이 오랜만에 한국 진영으로 넘어왔다. 위험한 상황이 되면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어 어"소리도 나오지 않을만큼 공격은 뭉툭했고 느렸다. 이미,수비진영은 다 갖춰져 있었다. 이리저리 공격 루트를 뚫다가 포기한듯 우즈베키스탄 선수가 좀 먼 거리에서 중거리슛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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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예상된 슛이었고 슛은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갔다. 그저 받아 안으면 되는 공이었다. 그런데 내 눈을 의심할 일이 벌어졌다. 야구에서야 흔히 알을 깐다고 해서 공을 놓치는 에러가 발생하지만 타조알보다도 더 큰 축구공을 '까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무슨 마술에 걸린 것처럼 골키퍼는 순간 버벅거렸고 골키퍼의 손과 몸을 벗어난 공은 한국팀 골대로 흘러들고 말았다. 흡사 공을 피하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상대가 사우디라도 됐으면 골키퍼 매수된 거 아니냐고 분통터뜨릴 상황.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영화로 치면 NG장면 같았고 성희롱 단속 홍보 비디오에서 이러면 안됩니다 X자 꽂히는 장면 같았다. 그러나 골은 골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넋을 잃었고 황선홍 선수 경우는 처절할 만큼 입을 벌리고 골대를 바라봤다. 승리의 여신이 포옹을 풀지 않은 채 귓전에 대고 "꺼져"라고 속삭인 느낌. 그날 차상광 골키퍼는 밤새 울었다고 전한다. 아마 평생 지워지지 않는 화상같은 기억으로 남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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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어디로 굴러갈지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경사진 경기장에서 공을 굴리면 당연히 아래쪽으로 갈 것이듯 도저히 질 수 없는, 질 수 없어,보이는 분위기가 있다. 그날도 그런 분위기였지만 그 경사는 내 착시였고 아무리 유리한 국면도 실수 한 방에 뒤집히고 아무리 거대한 방죽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인생의 진리를 절감시킨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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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즈벡과의 경기를 보면서 26년 전,우즈벡과의 일전이 떠올랐다. 다된 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제일 위험하다. 쌀씻을 때 콧물은 건져내면 그만이지만 다된밥에 코빠뜨리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경기에서 승기를 잡은 건 달리는 말의 고삐를 겨우 손에 넣은 것 뿐이다. 제대로 말을 몰지 말에서 떨어져 질질 끌려다가다가 머리 깨질지는 그 뒤의 일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에게 아니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상대가 이기는 일이 끔찍해서 마지못해 편을 드는 팀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요즘 불안하다. 그런 실수가 너무 많아서. 다행히 상대팀도 자기 진영으로 중거리슛 날리는 코미디를 벌여서 "복이 있다"고 하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