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경기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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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9일 내 생애 최고의 경기

아테네 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닫던 어느 날, 핸드볼 경기장 근처에서는 급조된 장터 하나가 열렸다. 한국 대 프랑스의 핸드볼 준결승이 끝난 뒤 한국에 패한 프랑스 관중들이 미리 구입해 놨던 결승전 티켓을 한국인들에게 팔아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매매는 쉽게 이루어졌으나 손해는 공급자측이 봤다. 프랑스인들이 가진 결승전 표가 너무 많고 한국 사람들은 그만큼 적었던 탓이다.

이 유명한 경기의 실황을 다시 읊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일어서서 경기를 보고 있었고 종료 후에는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흔들리지 않음이었다. 보는 사람이 손에 땀을 쥐다 못해 가슴이 터질 지경인데, 그래서 물 먹으려다가 주전자 하나를 쏟아버려 마누라한테 쥐어뜯기는 판이었는데 막상 경기장 안의 선수들은 실로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림이 없었다.

임영철 감독이 “참 그 상황에서도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하더라.”고 경탄했던 것처럼, 역전을 당하고 몇 점을 뒤져도 선수들은 당황하거나 기죽거나 발을 동동 굴러대지 않았다. 심판 판정이 결정적인 순간에 엿 자르듯 맥을 턱턱 끊어 놓아도, 덩치는 산만한 덴마크 아이들이 뼈가 부러질 듯이 깔아뭉개도, 한 일(一)자를 긋는 서예가의 붓처럼 미동이 없었다.

잘 나갈 때는 하늘의 별을 딸 듯 기고만장이다가 한 번 안 풀리기 시작하면 연신 삽질을 일삼다가 결국은 썩은 서까래 무너지듯 엎어지고 마는, 그런 모습을 나는 스포츠 경기에서나 우리 일상에서나 여러 번 봤었다. 하지만 아테네의 그녀들은 달랐다. 패배를 맞는 모습도 그랬다. 얼마간의 통한의 눈물 뒤 한국 선수들은 미친 듯이 기뻐 날뛰는 덴마크 선수들을 배경으로 손을 잡고 원을 만들었다. 눈물 범벅으로, 또는 어색한 웃음으로 카메라 앞을 지나며 서로에게 알 수 없는 격려를 주고받던 푸른 유니폼 선수들의 모습은 지금도 선연하다. 슬프나 그에 굴하지 않고, 원통하나 돌아보지 않는 패자들. 그들은 질 때는 이렇게 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핸드볼은 역시 바이킹의 후예였던 노르웨이와 맞붙었고 거기서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 결승 진출에 실패한다. 아테네의 ‘우생순’을 맞았던 임오경은 해설자석에 앉아 있었지만 오영란,오성옥,홍정호,허순영 등 서른 중반의 선수들은 그때도 코트를 뛰고 있었다. 그들보다 꼴랑 서너 살 많았던 주제에 “요즘 몸이 예전같지 않아”라든가 “나이가 나이인만큼”을 입에 달고 살던 나의 둔탁한 엉덩이를 콕콕 찔러 대면서.

어떤 경기에서였던가 해설을 하고 있던 임오경이 외쳤다. “필희야 슛해 ! 슛!” 슛 찬스에서 곧잘 머뭇거렸던 후배 문필희를 지켜보다가 그만 공중파 방송 해설자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묘한 감회에 빠졌다. 임오경과 문필희는 아테네의 그날 페널티 드로우를 넣지 못했던 바로 그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임오경의 절규가 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문필희는 장신의 서양 선수들 사이로 그야말로 대포알같은 중거리슛을 과감하게 성공시켰고 TV를 함께 보고 있던 동료들도 임오경처럼 그 이름을 부르짖으며 열광했다. “필희야아~~~~~~~~~~”

마침내 3,4위전에서 헝가리를 꺾고 동메달을 따기 직전, 감독이 작전 타임을 부른다. 그 입에서 나온 것은 작전 지시가 아니었다. “성옥이,영란이,정호,정희,순영이 나가라. 너희들(후배들)이 이해해. 이건 선배들 마지막 경기야.”

그리고 탈진 상태로 벤치에 있던 오성옥 이하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그들의 마지막 무대를 향해 뜀박질쳐 들어간다. 해설자석의 임오경이 멋있는 모습이라며 울먹이는 가운데, 92년 바르셀로나 이래 올림픽마다 단골로 참여하며 경기장을 누볐던 그들 모두는 그들의 삶 내내 잊지 못할 아름다운 1분을 맞는다. 그날 그들의 눈앞에는 무엇이 스쳐 지나갔을까. 그 모든 감동의 너울이자 봉우리. 2004년 오늘 ‘우생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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