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문송면

sanha8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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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 2일 슬픈 문송면

문송면.jpg

가난한 문씨 집안에 형제는 여섯이었다. 4남 2녀. 그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사내 아이까지 고등학교 교육을 시킬 여력이 집안에는 없었다. 유난히 착하고 부지런했던 막내 송면이는 고민 끝에 고향 충남 태안에서의 학업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기숙사가 있고 낮에는 일하되 밤에는 공부할 수 있다는 기업체에 입사한 것이다. 협성계공이라는 온도계 만드는 회사...였다. 1987년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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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에 갈 수 없다. 하지만 친구들처럼 나도 공부하고 싶다. 산골에서 농사지으며 뼈빠지게 고생만 하시는 부모님. 자식 공부 못시키는 부모님 맘이 오죽할까. 서울에는 고등학교 공부시켜 주는 공장이 있다는데.... ” (1987년 문송면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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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정도 압력계 도장실에서 페인트칠을 하고 신나로 닦아내는 보조 역할을 하다가 온도계 부서로 옮겨 수은 주입 작업에 투입됐다. 그런데 그 공간에 환기 시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입사한 지 한 달이 갓 지났을 때 시골에서 건장하게 큰 열 다섯 살의 청소년의 몸이 삭아들기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식을 치르러 고향에 내려왔을 때 그는 이미 환자였다. 그 해의 설날 그는 이미 눈을 까뒤집으며 경기를 했고 내내 몸져 누워 있었다.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병명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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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질도 이런 괴질이 없었다. 순박한 가족들은 의사도 모른다는 괴질을 물리치기 위해 굿판까지 벌였지만 송면이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경으로 서울대 병원에 들렀을 때에야 송면이와 가족들은 하늘이 덮친 듯 땅이 발목잡은 듯 송면이를 괴롭히던 병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수은 및 중금속 중독이었다. 서울대 병원 주치의는 공장에서 일했다는 말을 듣고 직업병을 의심했고 모발을 채취하여 검사한 결과 거기서 수은과 구리가 듬뿍 검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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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없이 건강하던 열 다섯 소년이 무당도 곡을 할 병에 걸려 시들었고 그 원인까지 과학적으로 제출되었지만, 그 원인을 규명하고 보상에 나서야 할, 우선적으로 미성년자였던 송면이의 권리를 살펴야 할 노동부 서울 남부지방 노동 사무소는 산재신청서류를 빙글빙글 돌리기만 했다. 이유는 사업주의 날인이 없다는 것과 ‘서울대학교 병원’이 산재보험 미지정의료 기관이라는 것. 사업주는 당연히 “다 멀쩡한데 왜 걔만 수은 중독이냐. 시골서 큰 녀석이니 농약 중독 아니냐.”는 식으로 나왔고, 국립 서울대학교 병원은 정부로부터 지정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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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송면이의 사연이 공개되면서 여론이 일어나고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자 노동부는 엉거주춤 수은 중독의 직업병을 인정했다. 1988년 6월 20일. 그러나 이미 송면이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송면의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그렇게 지내던 중 7월 2일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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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1시가 넘어가는데 내가 깜박 잠이 들었다. 송면이 침대에 팔을 얹고. 2시 조금 넘었나? 간호사들이 송면이가 숨을 멈췄다고 얘기하더라. 나는 그 순간을 못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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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면서 “살고 싶어. 병 다 나으면 무서운 서울 떠나 농사지으며 엄마랑 살자,”고 호소하던 순박한 충청도 소년은 형이 깜박 잠든 사이 형을 깨울세라 살며시, 아무도 모르게 외로이 숨을 거두었다. 열 다섯 살. 지금 내 딸의 나이와 같았던 한 소년, 공부하고 싶으나 공부할 수 없었고 열심히 살려 했으나 그 열심이 결국은 생을 갉아먹었던 한 73년생 소띠 소년의 가느다란 숨은 그렇게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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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웬수다. 네가 살고 내가 죽어야 할 것을.”이라며 영안실 바닥을 두드리던 문송면의 아버지도 끝내 가슴에 판 자식의 무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음해 세상을 뜬다. 그가 남긴 말은 “우리 송면이 학교 가야지.....”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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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면이는 그렇게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결코 작지 않은 변화를 불러 왔다. 송면의 죽음과 그를 위해 떨쳐 나선 사람들은 지금도 그 이름에 소름끼치는 원진 레이온 사태 대책위의 시발이 됐고, 그가 죽은 7월은 산재추방의 달로 기념되고 있다. 그 7월에 수십 명이 청춘들이 동일한 병으로 죽어갔지만 기업과 정부가 88년의 노동부와 회사처럼 아삼육이 되어 사람들의 죽음을 먼산 소나무 보듯하고 앉은 삼성반도체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못내 가슴이 아린다. 아마 그들도 송면이처럼 그 무서운 공장과 도시를 떠나고 싶어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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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의 상당 부분을 일과 건강 활동가 이현정님의 프레시안 기고에서 따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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