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의 오책> 한국 현대사의 옥편 - 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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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기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수박을 사려면 겉핥기(보기)를 잘해야 한다. 칼집을 내서 속을 들여다보는 수도 있겠지만 속이 뻘겋다고 다 달콤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겉보기를 잘해 고르는 쪽보다 효율이 떨어진다고 하겠다. 속을 알려면 일단 겉보기부터 잘해야 한다는 말이겠다. 겉을 모르고 속을 어찌 안단 말인가. 수박의 꼬리는 어때야 하고 줄의 색깔은 어때야 하며 두드려서 어떤 소리가 나야 한다는 정도를 알면 웬만큼은 속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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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메디치)는 일종의 현대사 겉핥기다. 더하여 상당히 효율적인 겉핥기라고 주장하는 바다. 그 겉핥기에 동원되는 기준은 바로 논쟁이다. 해방 후 이 땅을 달궜던 허다한 논쟁들을 박태균과 김호기, 이름만으로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학자들이 이 논쟁을 40개로 추려 냈다. 그들이 40개의 논쟁을 제시한 기준을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사회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과 담론에 관한 논쟁, 둘째 보수와 진보 사이의 논쟁, 셋째 현재적 의미가 큰 논쟁. 이쯤 되면 호기심이 돋는다. 현대사라는 이름의 수박을 논쟁으로 겉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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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읊기엔 입과 손가락이 동시에 아프니 몇 개만 짚어 보자. 분단원인 논쟁, 찬탁 반탁 논쟁,친일파 논쟁, 한국전쟁 해석 논쟁, 5.16 성격 논쟁, 한일국교정상화 청구권 자금논쟁, 베트남 파병 논쟁, 교육 평준화 논쟁, 연예인 대마초 사건 논쟁, 광주항쟁 논쟁, 사회구성체 논쟁, 주사파 발언 논쟁, 햇볕정책 논쟁, 뉴라이트 논쟁, 전시작전권 환수논쟁, 안철수 논쟁......웅얼거리다보면 그 사이에 역사가 씹히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논쟁에 귀가 따가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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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들 하나 하나가 두툼한 책 한 권이 넘게 나올 수 있는 소재들이니만큼 깊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했듯 겉핥기로는 그지없이 좋다. 더군다나 그 속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입문서가 될 것이다. 관심이 없더라도 생기게 만들 정도로 우리 논쟁의 현대사는 치열했고 흥미롭지만 동시에 생산적이기보다는 파괴적이었고 뿌듯하기보다는 아쉬운 경우가 많았음에 쓴 입맛을 다시게 되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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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대개 주장과 의견의 다름에서 시작하고 논쟁 가운데 옳고 그름이 밝혀지고 수긍과 인정이 뒤따라야 정상적인 경로일 텐데 우리 현대사의 논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논쟁은 대개 시시비비를 넘어 진영간의 투쟁으로 이어졌고 진영의 대의를 위해서는 시시비비가 의미가 곧잘 실종됐다. 나아가 진영을 위해 시시비비를 만들어내기도 했고 진영에 거스르는 시비는 즐겨 불경함으로 간주됐다. 그러다보면 논쟁은 실종되고 노선 투쟁과 사생결단으로 비화되는 일이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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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후 닥친 김대중과 김영삼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논쟁을 기록하면서 필자는 이런 정리를 하고 있다. “권력이 눈 앞에 다가왔다고 느꼈을 때 나타나는 오판은 1945년 해방 정국이나 1980년 서울의 봄, 1987년 대선까지 계속돼 왔다. 자신이 대결해야 할 대상은 다른 곳에 있지만 권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같은 진영의 라이벌을 고립시키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해방 정국에서 박헌영이 여운형에게 그랬고, 1956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조봉암에게, 1987년 김대중과 김영삼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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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을 보면서 나는 지금도 거의 미친 듯이 횡행하는 이재명 죽이기를 연상했다. 개인적으로 전혀 호감이 없는 정치인이지만 그에 대해 가해지는 광란의 공격은 권력에 근접하지도 못하면서 권력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기이한 정신 상태를 지닌 이들에 의해 연출되고 확산됐던 것이다. 그래도 판사를 했다는 작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린 방심위원의 부고 앞에서 ‘이재명 지지자이기에’ 그의 죽음이 다행이라는 식의 비인간성을 노출시킨 것은 무엇을 말할까. 바로 대선단일화 논쟁을 마무리하는 필자의 결론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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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는 계속 후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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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기이하게도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논쟁의 수준이 우하향 직선을 그린다는 느낌에 또 한 번 입맛이 썼다. 물론 그 바탕에 깔린 철학적, 역사적, 정치적 함의와 배경은 따로 존재할 것이지만 얼마 전 나경원 자한당 대표의 악필 논쟁같은 건 참 후손들에게 전해 주기도 뭐한 웃기는 논쟁 아니었나. 그 이전의 메갈과 한남 논쟁도 뭔가 좀 빙충맞고 영부인을 여사로 부르니 씨로 부르니 하며 치른 난리는 그저 실소만 흘리게 만들 뿐이며, 최근의 일본의 무역 도발과 관련된 논쟁들의 수준도 해방 공간의 친일파 논쟁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에서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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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은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다투고 논쟁하고 갈라지고 치고 받는 존재 같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매우 특별하고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겨룬다는 착각을 즐겨 하는 존재다. 그건 동서양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 릴리펏과 블레퍼스큐는 계란을 어느 쪽으로 깨느냐, 즉 굵은 쪽을 깨느냐 가는 쪽을 깨느냐 가지고 피가 튀기는 전쟁을 치렀을까. 조나단 스위프트의 눈에 영국 사회의 논쟁은 그렇게 보였으리라. 하지만 그런 논쟁을 통해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되짚고 새로운 미래의 단초를 만들어 나아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기도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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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한 번쯤 우리 현대사 ‘겉핥기’로 봐 두는 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현대사 옥편(玉篇)이다. ‘내 인생의 책’ 부류로 격상될 일은 드물겠으나 가끔 서재 앞에서 “어 그 책이 어디 있더라.” 하면서 두리번거리다가 겨우 겨우 찾아설랑 해당 부수와 독음을 찾는 옥편처럼 “이 논쟁이 언제 있었지?” 하면서 뒤적이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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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번 ‘조국 논쟁’은 매우 중요한 그리고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생전 정치 얘기 안하던 우리 동아리 동기 단톡방에서도 조국 논쟁은 미약하게나마 전개됐다. 그 논쟁은 최소한 2주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켜보아야겠다. 이 논쟁의 결론이 어떻게 될지. 또한 2~30년이 지난 뒤 어떤 자리를 차고 앉게 될까 더욱 궁금해진다. 그때쯤이면 이 책의 증보판이 나와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