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선조(宣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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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이연(李昖)이라고 한다. 이 이름을 알아보기는 어려울 것이니 너희들 아는 이름을 대 보겠다. 내 묘호는 선조(宣祖)다. 조선 왕조 제 14대 임금이며 이 나라 역사 미증유의 전란이었던 임진왜란을 겪었던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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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듣자마자 눈살 찌푸리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이는구나. 아서라. 나도 특별한 사정 아닌 한 목릉(穆陵- 선조의 능)에서 고이 잠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 정치꾼들에 의해 내 이름이 불리고 나를 본받지 마라느니 똑같다느니 하는 말들이 난무하여 눈을 뜨고 너희 세상을 돌아보았을 뿐이다.
자한당이라 불리는 무리들의 수장이 너희 대통령을 두고 이렇게 일갈하였다. “ 임진왜란 당시 무능한 임금 선조의 길을 걷지 말고 외교 라인을 빨리 교체하라.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나라를 구했다는 문 대통령 발언과 관련, 대통령은 삼도수군통제사가 아니고, 이순신을 울돌목으로 내몬 건 선조와 잘못된 조정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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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며 기분이 매우 나빴도다. 무능하다 욕을 먹어서가 아니다. 솔직히 나는 그리 무능한 임금은 아니었다. 사람이 교활하고 좁아 터지고 내가 지닌 것들을 잃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병통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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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똑똑하다고 여기는 자에게 바보라는 욕설이 가당하겠느냐. 더구나 내 보기에는 어디 밥풀로 붙인 듯 엉성하고 머리에는 솜뭉치가 든 것 같은 자한당 패가 나더러 무능하다 어쩌다 하니 풍신수길이 나더러 “그대는 왜 전쟁을 좋아하는가.” 꾸짖는 느낌이 들더란 말이야. 아니 이것들이 지금 누가 누구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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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분위기 파악 못하고 “우리가 정권 안잡으면 대한민국 망한다.”고 세상을 웃기거나 ‘달창’에 ‘반민특위 국민 분열론’에 5.18 인민군설‘까지 다양한 망언으로 사람들 부아 돋구며 지들 들어갈 공동묘지를 파고 자빠진 자들이 어찌 내가 왕이 됐던 이유를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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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왕이 될 수 없는 종친이었다. 중종 대왕이 우리 형제를 부르셔서 농을 하시며 한 번 내 익선관을 써 보라 할 때 형들은 덜렁 썼지만 나는 납작 엎드려서 “어찌 주상 전하만 쓰시는 익선관을 쓰겠습니까.” 우는 소리를 했다. 중종 대왕이 무슨 생각으로 그 관을 권하는지를 간파하고 있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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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니들이 집권당인 줄 알고, 아직도 북한 욕하면 사람들이 자기들 지지할 줄 알고, 북망산 갈 날 얼마 안남은 노인들 등에만 업혀 옹알거리는 자한당 패거리들아. 그것이 ’정치적 감각‘이라는 것이다. 이 시러베 자식들아 무지렁이의 여식들아. 누가 누구더러 무능하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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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나는 이 땅의 역사에서 가장 참혹하고 쓰라린 전쟁이었다 할 임진왜란을 겪었다. 장장 7년 동안 두만강변에서 진도 울돌목까지 거의 전 국토가 그 참상을 어찌 필설로 다할까. 그 악전고투 끝에 몰아낸 일본에게 수백년 뒤엔 결국 온 나라를 들어먹혔고 해방되었다 한 후에도 그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니 너희와 내가 일본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깊이는 다를지언정 색깔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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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1592년 시작해 1598년 무술년에 끝났다. 기해년은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맞는 해였다. 그러고보니 2019년 올해도 기해년이로구나. 공교롭게도 올 기해년, 너희는 느닷없이 일본으로부터 날아든 무역 도발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속을 끓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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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안다. 너희들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처럼 백성 버리고 제 살 길 찾아 튀는 선례를 남긴 임금이고, 이순신을 그리도 못살게 군 임금이고, 나를 따른 신하들은 겹으로 공신 시켜 주면서도 자기 모든 것을 내던진 의병장들은 툭하면 역모로 몰아 죽여 버렸던 나쁜 임금이다.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경험은 선한 자와 악당을 가리지 않는다. 오늘 너희에게 들려주려는 것은 내가 겪었던 전쟁의 단면들이다. 무엇을 해야 했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했는지를 되새기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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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은 농부에게 묻는 것이고 돼지 멱 따는 일은 백정이 제일 잘하는 법이다. 그리고 더욱 잘되려면 농사를 잘 아는 농부를 찾아야 하고 그럴싸한 돼지머리를 얻으려면 솜씨 좋은 백정을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그를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의 역량을 신뢰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워낙 솝이 좁아터진 자인지라 이순신의 전공을 시기하고 그 명망을 혐오하였으되 이순신을 발탁한 것은 나였다.
유성룡이 추천을 했다지만 말많은 삼사 관원들이 정읍 현감에서 전라 좌수사가 말이 되느냐고 아우성을 칠 때 난 이렇게 말하며 입을 막았다. “바꿀 수 있다면 왜 바꾸지 않겠는가.” 이순신 뿐이냐. 내 치세를 목릉성세(穆陵盛世)라 일컫거니와 내 대에는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인재들이 나왔던 시기였다. 그 인재들을 끝까지 활용하지 못한 건 내 패착이거니와 그들을 골라 내고 일을 맡긴 것은 내 안목이었다. 자랑하자는 게 아니다. 너희는 지금 그 일을 잘 하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즉 인재들을 잘 양성하고 전문가로 키우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좀 이야기는 다르지만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전쟁 전 조선의 정황을 상세히 정탐했고 각 도 사투리까지 쓰는 통역들을 양성해 두고 있었다. 우리는 일본을 거의 몰랐다. 조선이 산사태 나듯 무너져 내린 것은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쟁을 치르고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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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본을 여전히 몰랐는데 일본은 우리에 대해 연구를 계속했다. 유성룡이 쓴 징비록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화란인 하멜이 조선에서 머물다 탈출했을 때 조선은 화란이라는 나라조차 모르고 그들을 보냈지만 일본인들은 하멜에게 수백 가지 질문을 던지며 조선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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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얘기했지만 일본인에 대한 마음이야 너희와 내가 크게 다르랴. 그런데 일본을 너희는 잘 알고 있느냐. 일본인이 저지른 만행이야 조선 팔도에 차고 넘치고 너희들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만행의 대행진 말고, 너희는 일본의 역사와 그들의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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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다고 훈계하지 말라고, 웬 선비질이냐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가상하도다 그 용기. 그러나 이건 좀 얘기하고 싶다. 너희 가운데 “이건 전쟁 선포다.”하는 소리도 나오더구나. 일본 아이들이 저렇게 나오는 것을 일종의 전쟁 선포로 보고 우리도 그에 준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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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면 너희는 더 조신해야 한다. 임진왜란 때 나는 충천한 사기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무슨 결과를 가져오는지 너무 많이 보았다. 하나만 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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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도망갔을 때 적은 임진강으로 몰려 왔다. 임진강은 천혜의 방어선이었고 일본군은 도강 수단이 없었다. 그런데 한동안 강을 두고 우리와 대치하던 일본군이 천막을 불사르고 짐짓 후퇴하는 기미를 보였다. “놈들이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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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던 적이 도망가며 등을 보이면 사기가 두 배가 되는 건 동네 강아지부터 군 사령관까지 동서고금의 축생과 인생이 다르지 않다. 거기다 이쪽에는 형 신립 장군의 죽음 이후 복수심에 불타던 방어사 신할이 있었다. 문신이었고 대의명분에 충실한 도순찰사 한응인은 신할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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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필사적으로 말리고 나선 게 유극량이라는 사람이었다. 도망 노비의 아들로, 면천돼 과거에 올랐지만 신분이 비천하다 하여 결정적인 순간에 인생이 꼬이기 일쑤였던 사람이다. 너희의 호프 이순신의 전임 전라좌수사가 그였다. 그러나 그런 자리 감당할 깜냥이 안된다 하여 잘렸고 이순신이 그 뒤에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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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극량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속임수입니다. 조금 더 두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형 신립의 복수를 하려는 신할과 물정 모르는 한응인은 고집을 부렸다. “지금 안 치면 놈들이 경상도까지 내려간 뒤에 덮치겠다는 거야? 지금 저놈들을 치지 않는 건 이적행위요!” 유극량이 계속 반대하자 신할은 칼을 빼든다. “천한 것이 겁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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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극량은 화도 내지 못하고 자신이 선봉에 서겠노라 하고 임진강을 건너갔다. 그러나 우리역시 일본군은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다. 복수심에 불타던 신할 역시 속절없이 죽었고 한응인은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유극량은 최후까지 싸우다가 전사한다. 임진강 수비군은 괴멸됐고 나는 평양에 더 이상 머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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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라. 신할이 용기가 부족했겠느냐. 싸우려는 의지가 적었겠느냐. 그 뜻이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었겠느냐. 아니다. 그는 지당한 말을 했고 응당 해야 할 일을 했고, 그 일에 주저하는 이를 꾸짖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이기려면 그렇게 하면 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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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찰사 한응인은 문관으로 전쟁을 몰랐고 신할은 형 신립의 죽음 이후 복수심으로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들은 조급했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이라고 믿어 버린 순간 그 유리함을 이용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멍청해 보였고 그들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들 눈에 비친 유극량은 겁쟁이였고 그에 동조하는 도원수마저 아둔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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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응인은 상관인 도원수 김명원을 무시하고 작전을 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지만 이들은 적도 모르고 자신들도 몰랐던 것이다. 지금 너희는 어떤가. 너희가 잘못하고 있다고 타박하는 것이 아니다. 분노 속에서도 방향을 잘 잡고 있는지, 집집마다 피가 끓는 드높은 사기가 혹시 너희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조각들은 없는지 살펴 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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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그 참담한 세월 속에서 유극량 같은 이나 신할같은 이나 한응인 같은 이들은 수십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었다. 비록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임금이었을망정 나는 쌓여가는 장계들 속에서 그들을 보며 탄식하고 슬퍼했다. 이순신은 그런 면에서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시기 질투는 별도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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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절대로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시간에 싸웠다. 한때 부산포까지 진출했지만 고전을 치른 뒤에는 내가 눈에 불을 켜고 가라고 해도 부산 앞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이순신이 죽을 뻔한 건 너희도 잘 알지 않느냐.) 이순신은 용기 있는 자이면서 지혜로운 자였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나의 대에도 많았다. 너희도 그럴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지혜를 찾아보기 바란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나의 대에나 너희 대에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