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광을 팔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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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과 간만의 힐링 여행. 모녀지간의 수다가 끝이 없다. 대학을 앞둔 딸아이는 연애에 관심이 많고 아내는 왕년에 자신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가를 장대한 에피소드를 들어 설명하고 딸은 충실한 청강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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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대 00학과 애였는데 키가 185였어. 몇 달을 엄마 쫓아다녔는데 이상하게 엄마는 그때 키 큰 남자가 싫었어. 전철에서 얘기하는데 글쎄 내 귀에 안들리는 거야 너무 높아서. 다리를 굽히고 얘길 하는데 그 순간 너무 자존심이 팍 상하는 거야. 그래서 끝냈지.”
“왜애? 나는 딱 서면 내 머리가 남자 턱 아래 와야 이상형인데.”
“그러게 말이야. 지금은 아빠 키를 어디 가서 수술시켜서 5센티미터만 키웠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런데 옛날엔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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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경희대 앞에서 술 먹는데 한 남학생이 딱 앞에 선 거야. 처음 보는 앤데 학생증을 내밀면서 자기가 00대 학생인데 이번에 어디 파일럿 시험이 됐대. 그러니까 교육 받은 뒤에 항공사 파일럿이 된다는 거야. 그런데 오래 전부터 경희대 앞에서 엄마를 봐 왔다는 거야. 거기가 엄마 친구들 아지트였거든. 그래서 이번에 파일럿 시험 합격하고 교육 받고 와서 정식으로 사귀자는 거야. 아니 결혼하자고까지 했어. 자기 집안 얘기까지 하면서.”
“우와 박력있다. 어떻게 했어?”
“어쩌긴 뭐 이런 미친 놈이 있나 홱 돌아서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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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로 지낸 애가 있었는데 집안이 약사 집안이었고 약대를 갔어. 대학교 1학년 때라 허물없이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뭐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애가 슬그머니 손을 잡는 거야. 그때 빡 돌아서 우산 던져 버리고 집에 가 버리고 그 뒤엔 쳐다보지도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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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끝이 없다. 지금까지 ‘아내의 왕년’ 얘기를 주구리장창 들어 왔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배경이 리셋된다. 잘 들어보면 연애다운 연애는 한 번도 못한 거 같은데 아내를 좋아했던 남자들은 가히 국회의원 수 쯤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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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그렇게 눈이 높았군. ‘그러니까’ 나랑 결혼했군.”이라며 눙을 치자 단호하게 “접속사가 틀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맞지.”라고 선을 긋기에 왜 그랬던 거 같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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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 필요하다, 연애해야겠다 싶을 때 그때 곁에 있었던 게 당신이었던 거지. 그런 게 운명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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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싸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아들 녀석에게 이 얘기를 들려 줬더니 아들 녀석이 불쑥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뭐야 아빠는 광 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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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가지고는 팔지도 못하는 비광이 들어왔던 것인지 5광에 국진 똥 상피를 팔았던 것인지는 뭐 판단하기에 따라 다르되 어쨌건 그 자리에 있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어서 연애하고 결혼도 빨리 하고 싶다는 딸내미는 그렇게 누군가 광 팔게 만들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고도리도 하고 쓰리고도 부르는 사랑꾼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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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찍은 동해 바다